인텔(Intel), GE(제너럴 일렉트릭), HP(휴렛팩커드), 노키아(Nokia), 테스코(Tesco)…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CFO(최고재무책임자)와 CFO 출신 CEO가 회사를 망쳤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CFO는 흔히 ‘회사의 금고지기’로 불린다.
재무 건전성 확보, 자금 흐름 통제, 투자 위험과 재무 리스크의 사전 점검 및 예방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역할을 ‘지나치게 충실히 수행한’ CFO와 CFO 출신 CEO가 회사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이들의 보수적인 판단으로 투자 적기를 놓치고, 결국 기업 경쟁력 훼손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단기 수익성 중심의 의사결정이 장기 성장성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역설이다.
인텔은 전세계 반도체 산업의 제왕이었지만, 끝없는 추락을 이어가고 있다.
창업자인 고든 무어, 앤디 그로브를 비롯한 반도체 전문가들이 이끌었지만 재무전문가 출신 CEO들을 거치면서 기술 주도권을 잃어왔다.
수익성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미래 투자를 유보했지만, 결과적으로 숫자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되었다.
GE는 혁신 기업의 상징이었지만, 회계적 기법으로 이익을 꾸미는 데 집중하면서 본질적인 비즈니스 혁신에는 소홀했다.
CFO가 주도한 단기 수익성 중심 경영은 기업 신뢰 하락과 함께 주가 하락, 조직 해체라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HP는 재무 중심의 판단으로 과감한 기술 투자보다는 비용절감 중심의 구조조정을 택했고, 혁신 기업의 이미지를 잃고, 후속 CEO들도 성장 동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기술 기업의 속성과 시장 변화를 수치만으로 해석하면서 전략적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지만, 스마트폰 초기에 안드로이드 생태계로의 전환을 수익성 저해 요소로 보고 외면했다.
CFO와 경영진은 기존 피처폰 수익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존재감을 잃게 되었다.
국내도 이런 사례들이 다수다.
필자가 코칭을 진행한 모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CEO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현재가 투자 적기라고 판단했지만, 재무관리자 출신 부회장의 의사결정 보류로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보다, ‘문제가 안 생기게, 이익이 나게, 비용을 줄일 수 있게’가 경영의 기본 원칙이 되면서 창의적이고 리스크 있는 도전을 기획하거나 제안하는 문화가 위축되면서 조직 전체가 ‘관리형 관료체제’로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CFO는 본능적으로 리스크를 통제하는 ‘보수적 관리자’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된다.
하지만 기업이 지속 성장하려면, 리스크 회피가 아니라 감내 가능한 범위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투자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CFO와 CFO 출신 CEO가 조직의 미래를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전략가로서 거듭나도록 할 수 있을까?
1. CFO 역할을 ‘전략가’로 확장
CFO는 단순한 재무관리자에서, 비즈니스 전체와 전략을 이해하고 투자를 설계하는 전략가로 진화해야 한다.
제품, 고객, 기술, 시장 흐름과 전략에 대한 이해 없이 숫자만 보는 CFO는 근시안으로 조직을 망하게 하는 주범으로 전락될 수 있다.
따라서, CFO는 ‘사업’과 ‘전략’을 공부해야 한다.
2. C-Level 경영진간 견제와 균형
CFO는 CEO의 비전과 전략이 현실성 없이 추진되지 않도록 돕되, 동시에 현재의 숫자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미래 전략 방향을 토대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CTO, CMO 등을 포함한 다양한 관점의 리더십 팀을 구성하여 미래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3. 이사회와 주주의 인식 변화
단기 성과에 매몰된 주주 중심주의는 기업의 장기 성장을 가로막는다.
CFO와 CEO의 단기 성과 압박을 완화하고, 실패를 포함한 도전을 응원하는 환경,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HR의 변화도 필요하다.
HR에서는 주로 ‘리더십 교육’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경영자와 리더들에게 필수적인 교육은 사업적 통찰력, 전략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량, 전략적 의사결정 역량을 키우는 ‘전략 교육’이 필수다.
하지만, 전략 교육을 하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필자는 기업의 경영자와 리더들을 대상으로 ‘전략적 사고와 비즈니스 인사이트’라는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는데, CEO와 임원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팀장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꼭 나오는 후기가 있다.
“우리회사 경영진들이 이러한 강의를 들었다면, 회사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
호건(Robert Hogan)의 리더십 역량 모델(Hogan Leadership Model)에서도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모델은 효과적인 리더가 되기 위한 핵심 역량으로 4가지(개인 내적 스킬, 대인간 스킬, 리더십 스킬, 비즈니스 스킬)를 제시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역량은 ‘개인 내적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를 육성할 때 비즈니스 성과나 전략 역량 못지않게, 자기 인식과 자기 관리 역량을 평가하고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회사의 ‘생존’과 ‘지속 성장’ 관점에서는 ‘비즈니스 스킬’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 내적 스킬이 뛰어난 리더라도 전략적 사고, 사업적 통찰력, 전략적 의사결정 역량, 자원관리 역량이 부족하면 기업이 생존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겠는가! 리더들이 전략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Hogan Leadership Model [그림] 비즈니스임팩트 |
조직의 재무 건전성을 챙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에만 의존하는 판단은 필연적으로 미래 기회를 외면하게 만든다.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안정’이 아니라, ‘변화를 감지하고, 투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숫자를 통해 회사를 지킬 수 있지만, 숫자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진 않는다.
위험을 관리하는 사람은 필요하지만, 미래를 가로막는 사람은 위험하다.
당신은 숫자만 보는 근시안을 가진 통제자인가? 숫자 넘어 미래를 보는 진정한 전략가인가?
비즈니스임팩트 이재형 대표(경영학 박사, 경영자∙임원 코치)·세종사이버대학교 경영대학원 MBA학과 겸임교수
 |
비즈니스임팩트 이재형 대표(경영학 박사, 경영자∙임원 코치) |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