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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마리안느 페이스풀. 사진|페이스풀 SNS |
60년대 영국 팝의 요정으로 불린 가수 겸 배우 마리안느 페이스풀이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페이스풀의 대변인은 “마리안느가 오늘 런던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며 “그가 정말로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연인이었던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페이스풀과 찍은 흑백 사진을 올리며 “그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일부였다.
그는 훌륭한 친구, 아름다운 가수이자 훌륭한 배우였다.
항상 그를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페이스풀은 귀엽고 청순한 외모에 매혹적인 목소리로 주목 받았다.
당대의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러나 롤링스톤스 리더 믹 재거와 사귀며 마약의 늪에 빠지는 등 개인사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64년 영국의 록 밴드 롤링 스톤스 매니저인 앤드루 루그 올드햄이 16살의 페이스풀을 영입했다.
올드햄을 통해 알게 된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애즈 티어즈 고 바이(As Tears Go By)’를 불러 유명해졌다.
이후 ‘디스 리틀 버드(This Little Bird)’, ‘서머 나잇(Summer Nights)’, ‘루시 조던의 발라드(The Ballad of Lucy Jordan)’ 등 앨범을 발표해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 대표 미남 배우 고(故) 알랭 들롱과 ‘오토바이를 탄 소녀(The Girl on a Motorcycle)’에서 호흡을 맞추는 등 여러 영화나 연극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했다.
페이스풀은 19살부터 재거와 동거했으나 여성 편력이 심한 재거와 오래 가지 못했고, 결국 재거의 아이를 유산한 후 열애 3년 만에 결별했다.
롤링스톤스는 마약, 음주, 기물파손, 폭력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으며 페이스풀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거와 사귀던 1967년에는 경찰 단속에서 마약에 취한 채 모피 깔개만 걸친 채 발견되는가 하면, 재거와 이별한 뒤 런던에서 2년간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9년 앨범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를 발표해 재기에 성공했고 1981년 그래미상을 받았다.
또 재즈와 블루스로 방향을 틀어 1987년 ‘이상한 날씨(Strange Weather)’를 발표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청아한듯 묘하게 우울한 페이스풀의 목소리는 두고두고 남을 만하다.
가디언의 팝 평론가 알렉시스 페트리디스는 “페이스풀의 목소리는 노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갈망적이고 우울했다”고 평했다.
2020년 코로나19에 감염돼 목소리가 망가졌을 때 그는 “앞으로 노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페이스풀의 별세에 동료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수 겸 슈퍼모델 카를라 브루니는 인스타그램에 “내 친구여, 천사들과 함께 편히 쉬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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