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이사장 (연합뉴스)
▲CEO 오늘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가 아버지 고소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오랜 인연이 있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골프 교육 콘텐츠 기업인 바즈인터내셔널 회장 겸 박세리희망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세리는 18일 재단의 아버지 박준철씨에 대한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고소 관련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앞서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9월 부친 박씨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했으며, 경찰은 최근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추진한 A사는 박준철 씨를 통해 박세리희망재단에 운영 참여를 제안했고, 이후 박준철씨로부터 도장이 찍힌 사업참가의향서를 받아 관계청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박세리희망재단은 바로 이 사업참가의향서에 찍힌 도장이 위조라며 박준철 씨를 고소한 것입니다.

이번 고소는 박세리희망재단이 이사회 결의를 거쳐 결정됐습니다.

박세리는 기자회견에서 재단 이사회에 고소 의견을 먼저 낸 건 자신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재단 차원에서 고소장을 냈지만 제가 이사장이고, 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소를 진행하게 됐다"며 "제가 먼저 (이사회에) 사건의 심각성을 말씀드렸고, 제가 먼저 (고소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내놨다"고 말했습니다.

박세리는 '이 일로 부녀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냐'는 물음에 '전혀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부친의 채무 문제가 불거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회견 내내 단단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가던 박세리는 그와 24년 인연이 있는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2000년쯤부터 오랫동안 같이 봐 왔고 같이 현장에 있던 기자로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며 "참 만감이 교차한다. 제 목소리도 떨리는 심정"이라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아버지나 어머니, 자매들이 함께했던 시간들이 참 보기 좋았다"면서 "충분히 엄마나 언니와 소통이 되는 상황인데,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아버지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우리 박 프로의 모습을 보니까 참 안타까워서 질문한다"고 말했습니다.

질문을 받은 박세리는 64초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굳은 얼굴로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했지만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박세리는 "저는 눈물이 안 날 줄 알았어요, 진짜"라며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왜냐면 화도 너무 나고…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가족이 저한테 가장 컸으니까. 그게 다인 줄 알고 시작을 했고"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박세리는 "막을 수 없냐고 말씀하셨는데, 막았다. 계속 막았고 계속 반대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아빠와 제 의견이 완전히 달랐다. 한 번도 아빠의 의견에 찬성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면서 "저는 그냥 제 갈 길을 갔고, 아버지 가시는 길을 만들어드렸다. 그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던 박세리는 이내 감정을 다잡고 "근데 어차피 지금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 해결될 일만 남았다. 저는 앞으로 갈 길이 확고히 정해져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 일과 관련해선)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박세리는 "앞으로 제가 갈 방향과 도전, 꿈을 위해서 (아버지와) 정확히 나눠야 할 부분은 확실히 나눠 가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이 확실하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선 거다. 한번 더 확실하게 하고 가야지만 제 길을 더 단단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사건과 관련해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씨는 "재단의 도장을 위조하지 않았으며 사업 시공사 측의 요청에 따라 동의만 해준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준철 씨는 지난 11일 MBC를 통해 "박세리가 있어야 얘들(시공사)이 대화할 때 새만금에서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생각에… 내가 아버지니까 그래도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영 활동의 평가

△ 박세리희망재단, 지난해 2억 넘게 손실

박세리희망재단은 재단소개를 통해 "박세리 국가대표 감독의 유무형 자산으로 바탕으로 골프 인재 양성 및 스포츠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2016년에 설립됐다"며 "스포츠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후원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을 통하여 골프 및 스포츠산업을 발전시키고, 골프 인재 양성 사업으로 수많은 '박세리 키즈'를 배출해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세리희망재단이 공시한 재단의 재무상태표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재단 보유 현금(현금성자산 포함)은 1억 1435만 원 수준으로 전체 유동사산(1억 1490만 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단 현금은 전년(3억 3575만 원)보다 2억 원 가량 줄어든 것으로 인지도 높은 여타 재단과 비교해 규모가 크게 적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유형자산은 104만 원 수준으로 전체자산(유동·유형) 총계가 1억 1595만 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재단의 부채는 유동부채, 미지급금, 선수금, 예수금 등으로 총 280만 원 가량으로 크지 않은 상황이고 잉여금 역시 1315만 원 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지난해 재단의 사업수입은 8521만 원으로 기부금수익(8500만 원)이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에 비해 사업비용은 3억 831만 원이 소요돼 사업손실이 2억 2310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도에 5355만 원의 사업이익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1년새 재단 살림이 크게 악화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박세리씨 부친이 참여하고자 했던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 사업'의 우선협상자가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이달 초 이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민간 사업자의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새만금개발청이 민간 사업자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박씨의 부친이 허위 서류를 제출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우선협상자 선정 이후 사업계획 검증 및 협의 단계에서 재단에 직접 사업 의향을 물었으나 재단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박세리희망재단은 최근 홈페이지에 '박세리 감독은 국제골프스쿨, 박세리 국제학교(골프 아카데미 및 태안, 새만금 등 전국 모든 곳 포함) 유치 및 설립 계획·예정이 없다'는 안내문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재단에 사업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민간 사업자에 해명을 요구했으며 진위 확인, 청문, 법률 자문 등을 거쳐 우선협상자 지정을 취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발청은 민간 사업자에게 직접 투자비(3000억 원)의 약 2%에 해당하는 '우선협상 이행 보증증권'을 회수했습니다.

서울보증보험에 이 증권을 넘기면 60억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새만금개발청은 이 민간 사업자가 일정 기간 새만금 사업에 참여하지 않도록 제한할 방침입니다.

새만금개발청은 민간 사업자가 가처분 등 소송을 제기할 것에 대비해 법률 자문을 마친 상태입니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민간 사업자는 박씨의 부친이 추진하고자 했던 국제골프학교 사업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씨의 부친이 박세리희망재단 회장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발표에도 참여하니 정말 그가 박씨를 대변하고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 사업은 민간 자본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우선협상자 지정 취소에 따른 국고 손실은 없다"며 "복합단지 사업 기간은 2030년까지로, 올해 10월 개장 예정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생애

박세리는 1977년 9월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아버지 박준철의 3녀 중 둘째로 출생했고 생후 열흘 만에 대전광역시 유성구로 이주해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육상을 시작으로 스포츠에 입문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89년 싱글 핸디캐퍼였던 골프광 아버지 박준철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쉬는 날 없이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당시 언론에서는 박세리를 '무서운 10대'로 불렀습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박세리는 1992년 중3 시절 초청 받은 KLPGA 대회 '라일앤스콧 여자오픈'에서 원재숙을 연장 전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아무리 LPGA - JLPGA 대비 한 수 아래의 투어라고 해도 중 3이라는 나이에 프로 선수와 연장에서 승리한 것 자체로 체육계에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듬해 1승을 추가한 뒤, 고3이었던 1995년에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즌 4승을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습니다.

1997년 1년간 세계 최고의 교습가 중 하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 코치로부터 철저한 레슨을 받으며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열린 퀄리파잉스쿨에서 현재도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인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Q스쿨을 통과하며 화려하게 LPGA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1998년 US Women's Open에서 우승하며 국민적 스타 반열에 올랐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골프 여제로 불린 아니카 소렌스탐 선수 아래에 캐리 웹과 1강 2중 체제로 함께 여자 골프 시장을 양분했습니다.

현재 세계를 누비는 한국의 여성 골퍼들에게 영감을 준 최고의 선수로, 상징적인 면에서 앞으로 어떤 선수가 등장해도 넘어서기 어려운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6년을 끝으로 프로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수행하였으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또한 수행하였습니다.


▲학력/경력/가족

학력 : 대전 유성국민학교 졸업
갈마중학교 졸업
금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경력 : 1998년 LPGA 투어 US 여자오픈 우승, LPGA 신인상
1999년 LPGA 투어 페이지넷 챔피언십 우승
2001년 LPGA 투어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 우승
2002년 LPGA 투어 맥도널드 챔피언십 우승
2003년 LPGA 투어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 우승
2004년 LPGA 투어 미켈럽 울트라 오픈 우승
2006년 LPGA 투어 맥도널드 챔피언십 우승
2007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헌액
2008년 LPGA 투어 CN 캐나다 여자 오픈 준우승
2009년 LPGA 투어 스테이트 팜 클래식 준우승
2010년 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 우승
2010년 제48회 대한민국체육상 청룡장
2011년 KLPGA 투어 한화 챔피언스 채리티 골프대회 3위
2012년 KLPGA 투어 KDB대우증권 클래식 우승
2014~2016년 하나금융그룹 골프단
2016년 KLPGA 대상 시상식 박세리 특별상
2016년 제31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2016년 박세리희망재단 설립, 이사장
2019년 제32회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2019년 바즈인터내셔널 CO-CEO

[ 황주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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