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춘희 디자이너가 서울 성수동 '미스지콜렉션' 사무실에서 부자재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승환 기자


심은하, 김희애, 고현정, 이나영, 이보영…. 셀 수 없이 많은 톱 여배우들의 웨딩·시상식 드레스를 만들어준 패션디자이너 지춘희.
그는 1979년 서울 명동 한복판에 '미스지콜렉션'을 론칭한 이후 40년 넘게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1세대 여성복 디자이너다.


지춘희 디자이너는 '여성은 여성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콘셉트에 기반해 여성들에게 연령에 상관없이 보다 여성스러운 선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을 제시해왔다.


주로 페미닌한 실루엣과 세심한 테일러링을 활용해 여성의 섬세함과 강인함을 모던하게 표현한다.

현재 청담동 단독 매장,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등에 7개 매장을 갖고 있다.


5일 매일경제는 지난달 2024 FW시즌 패션쇼를 마친 지 디자이너를 성수동에 있는 그의 작업 공간에서 만났다.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에 미스지콜렉션의 베이지색 재킷을 걸친 그는 디자이너로서의 카리스마와 소녀 같은 순수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지춘희의 컬렉션은 늘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지난달 20일 운현궁에서 '새벽 숲(Misty Forest)'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그의 새 컬렉션도 마찬가지. 특히 안개 낀 겨울 새벽 숲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수채화 같은 느낌으로 담아내 극찬을 받았는데, 전부 프린팅이 아니라 수차례 염색을 거쳐 만든 결과물이다.


지 디자이너는 모든 옷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다.

40년 넘게 손발을 맞춰온 '지춘희팀'은 재봉·재단·염색 등 분야별 장인들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옷을 제작하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 옷을 100% 생산하며 대한민국 패션 산업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말 '2023 대한민국 패션대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 디자이너는 "국내 최고 실력의 재봉·재단 장인들과 오랫동안 한 팀으로 일을 해오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분들 나이가 거의 다 예순이 넘었다.

이제 대가 끊기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산업구조가 바뀌어 해외 생산이 대세가 됐지만 기술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는 것. 옷 만드는 일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정부는 물론 패션 업계에서도 관련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스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기업, 협회 등이 재능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 디자이너는 "1명이 5000만원으로 쇼를 해야 하는 것을, 10명에게 500만원씩 나눠주고 있는데, 그런 지원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가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디자인을 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지 디자이너는 그 동력으로 '호기심'과 '상상력'을 꼽았다.


그는 "이것도 궁금하고 저것도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일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어떤 장면에 무슨 옷을 입으면 가장 예쁠까를 상상하며 디자인한다"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실제 톱스타들도 시상식과 결혼식 등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을 위해 지 디자이너를 찾는다.

앞으로도 하던 대로 계속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그는 "여자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생기지 않나. 그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옷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지춘희'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어려운 듯 한참 만에 나온 대답은 "옷 잘 만드는 여자"였다.

그는 "그런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것은 상관없다.

옷 하는 사람이 그거 하나면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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