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는 공항을 가득 채운 여행객들의 들뜬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에 녹아들며 행복에 젖는 시간,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린다.

하늘길이 막히며 해외여행의 기쁨을 잃어버린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19로 일상에서 '랜선'이 대세가 됐다.

직원들과 마스크 없이 저녁을 즐기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까마득할 정도다.

직장 생활 40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라 매일같이 가족과 집밥을 함께하는 요즘이 낯설고도 새롭다.


반복되는 메뉴 고민에 지쳐가던 어느 휴일, 가족들에게 모처럼 외식하자고 했다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불 밖은 위험하단다.

무안해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큰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황당한 제안을 했다.

"우리 여행 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니 몸이 떠나야만 여행은 아니라며 음식으로 여행을 가보자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기발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스페인으로 정하고 음식과 함께 스페인에 관한 이야깃거리를 하나씩 준비하기로 했다.

배달 앱 화면에 머리를 맞대고 스페인 요리를 하나하나 고르는 순간이 우리 여행의 시작이었다.

슬슬 음식이 도착했고 스페인 국민 음식 파에야와 감바스를 본격적으로 즐기려던 와중에 아내가 마드리드에 가보고 싶다며 솔 광장 이야기를 시작했다.

"쏠? 우리 회사 앱 이름인데? 무조건 좋지!" 하며 들어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태양의 문'이라는 별명처럼 둥근 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햇살 모양으로 쭉 뻗어나가는 형상이란다.

현장에서 바라봤다면 모를 수도 있었던 사실이었다.


둘째 아이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대표작이자 무려 140여 년 동안이나 공사를 이어온 스페인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했다.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작품을 드론 영상으로 함께 보며, 동틀 때부터 해 질 녘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의 다채로움을 타임랩스로 지켜볼 수 있었다.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방구석 랜선 여행이라 가능한 경험이었다.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별점 5점 만점을 꽉 채운 여행을 다녀왔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을 통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행으로 자유를 찾고 진정한 나로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자는 의미다.

여행객에게 다시 문을 여는 나라가 하나둘씩 늘고 있지만 답답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는 좀처럼 알기 힘들다.

하지만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그리고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거라 하지 않던가. 몸은 떠나지 못해도 음식으로 스페인을 오롯이 느끼고, 직접 보지 못해도 대화를 나누며 설렘을 경험할 수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랜선 여행이라도 떠나보자. 낯선 경험이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 주말 튀니지 여행이 기대가 된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