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 사상 첫 ‘핵무기 협력’...유럽 핵우산 펼친다

러시아 위협·미국 변덕에 안보 우려 가중
스타머 “국방 협력으로 공동 역량 강화”
마크롱 “영국과 프랑스, 유럽 안보 책임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두번째)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EPA 연합뉴스

유럽의 핵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기 등 핵전력 사용 조율을 사상 처음으로 합의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이 거세지고 미국과의 안보 동맹은 위태로워지는 등 유럽의 안보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가 나서 유럽 방위에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양국 간 핵 협력을 강화하고 핵 억지력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것에 합의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합의는 양국 간의 (핵) 억지력이 사상 처음으로 독립적이면서도 조율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영국이나 프랑스의 중대한 이익을 위협하는 적대 세력은 양국이 강력한 핵전력으로 대응 할 수 있다.

우리가 대응할 수 없는 위협은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번 협력에 대해 “두 핵 강국 간의 연대는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스타머 총리는 성명을 내고 “영국과 프랑스는 긴 국방 협력의 역사를 갖고 있다”며 “오늘 합의는 우리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킬 것. 우리는 힘을 공유해 공동의 역량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양국의 이번 조치는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영국과 프랑스가 핵우산을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하던 차에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전쟁이 지속되면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선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여기에 더해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안보 동맹에서 발을 빼고 유럽에 자력 방어를 요구하며 안보 불안이 가중돼왔다.

나토 고위 관리 출신의 까미유 그랑 유럽외교관계위원회 명예 정책 연구위원은 FT에 “이번 합의는 양국의 핵 정책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라면서 “유럽 안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공약을 보여주는 매우 강력한 선언”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나토의 핵 기획그룹(NPG) 회원국으로 나토 안보 차원에서 자국의 핵 보유 전력을 공유해왔다.

그러나 프랑스는 나토 핵 공유 협정에서 빠져있어서 핵무기 사용에 있어서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하겠단 입장을 고수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국의 핵무기 사용을 결정하는 요소에 ‘유럽 차원의 이익’이 있다면서도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며 핵 억지의 핵심인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핵전력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인 8일 영국 의회 연설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안보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지금은 이를 명확히 밝힐 때”라고 말했다.

로런스 프리드먼 킹스칼리지런던 명예교수는 FT에 “내가 아는 한 프랑스는 핵전력을 누군가와 조율한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며 “(이번 합의는)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했다.

양국은 핵전력에 대한 공동 조율 외에도 2010년 양국이 합의한 ‘랭커스터 하우스’ 방위 협정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랭커스터 하우스 2.0 선언’에도 서명할 예정이다.

2.0 선언에는 △우크라이나 전장에 동원된 공대지 순항미사일 영국의 스톰섀도와 프랑스의 스칼프를 대체하기 위한 차세대 장거리 미사일 개발 △차세대 공대공미사일, 드론과 미사일 격추용 극초단파 무기 개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동시타격 역량 향상 등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