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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콜카타에서 열린 여성 대상 폭력 반대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사진 = EPA] |
인도 동부의 한 지역 고등법원이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감 중인 20대 남성에게 피해자와 결혼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결정은 피해자의 권리와 일명 ‘가해자와 결혼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관행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피해 여성(22)은 2019년, 당시 자신이 16세였을 때 남성과의 성관계가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결혼을 약속하며 접근했고, 여성은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 임신했으나 모두 강제로 낙태를 당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남성(26)은 2023년, 인도 아동성범죄보호법(PO
CSO)에 따라 구속됐다.
이 법은 18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나 착취를 금지하는 성 중립 법률이다.
최근 그는 “양가 모두 결혼에 동의했다”며 보석을 신청했고, 변호인은 “출소 후 즉시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오디샤주 고등법원은 두 사람이 나이 차이가 크지 않고, 사건 이전에도 가까운 관계였다는 점을 들어 보석을 허가했다.
판결문에서 사니지브 쿠마르 파니그라히 판사는 “법적으로는 중대한 혐의지만, 본 건은 실제로는 상호 합의된 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며 “양가의 합의와 두 사람의 미래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보석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은 곧바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도에서 논란이 돼온 ‘가해자와 결혼하면 처벌을 감면받는 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한 시민은 “가해자가 결혼을 조건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오려는 꼼수”라며 “법은 이런 속임수를 간파하고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는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울부짖는데, 법원은 가해자에게 합법적으로 다시 성폭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셈”이라며 분노를 드러냈다.
보수 성향 뉴스사이트 ‘오피인디아(OpIndia)’도 “인도 법원이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가해자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보석을 허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15세 여성을 납치·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남성에게 한 아동법원이 “사랑하는 관계였다”며 보석을 허가한 사례도 있었다.
판사는 피해자가 “충분히 성숙해 자신의 행동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올 2월에는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이 피해자의 사진을 유포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26세 남성에게 보석을 허가하며, 출소 후 3개월 내 피해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해당 판결문에서 판사는 “피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피인디아는 “인도 사법부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편견에 젖어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인도 정부는 지난해 10월 혼인 중 강간을 범죄로 규정하자는 개정 논의를 “과도하게 가혹하다”며 일축했다.
이는 결혼 안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제의 잔재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중앙정부는 “남성이 아내와 성관계를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법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형법 개정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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