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전투표소 용지 대거 반출…투표지 들고 밥 먹으러 가기도

이재명 투표한 구신촌주민센터
관외투표자 몰려 대기 길어지자
용지 받고 투표소 밖으로 나가
‘수령 후 기표’ 법 위반 가능성
대기 중 일부는 식사하고 오기도
신분 재확인 없이 기표해 논란
선관위 “관리 미흡 송구…재발 방지 노력할 것”

29일 오전 11시 25분께 구신촌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배부받은 투표용지를 들고 투표소에 줄을 서 있다.

[지혜진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 날인 29일 서울 시내 사전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투표소 외부로 대거 반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투표소 선거관리인이 관외투표자가 몰려 투표소 내부 대기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배부한 선거인들을 외부에서 대기시킨 것이다.

투표용지를 받고 기표를 기다리던 선거인들은 투표용지를 사진으로 찍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일부 선거인은 대기줄이 길다는 이유로 기표를 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들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오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 25분께 서울 서대문구 구신촌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앞에는 투표소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관외선거인 대기줄이 형성됐다.

이들은 모두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손에 쥔 채 기표소에 들어갈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분증과 본인확인이 기표보다 더 빨리 진행되자 신분 확인이 끝난 선거인들에게 투표용지를 배부한 뒤 투표소 밖에서 기다리게 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상황이 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인은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야 한다.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투표소를 퇴장하는 절차에 따라 투표가 마무리된다.

이에 따라 선거인이 기표 전인 투표용지를 받은 상태에서 투표소 밖으로 나가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선거관리인이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나눠준 뒤 투표소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투표용지 유출을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다.

투표용지 유출, 이중투표 등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이 투표소에서 관외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여성 선거인 두 명은 대기가 길어지자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선거관리인은 두 여성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고 황급히 투표소 안으로 들여보냈다.

선거인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대기줄을 이탈해 투표소를 벗어난 사실이 명백함에도, 대리투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신분 재확인 없이 기표를 진행하게 한 것이다.

여성들은 “본인인증을 하고 투표용지를 받은 후 기표줄이 너무 길어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며 “다시 줄을 서 있었는데 투표 안내원이 여긴 본인확인줄이니 기표줄로 가서 기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바로 기표줄로 올라와 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11시 30분께 구신촌동주민센터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배부받은 투표용지와 봉투를 들고 투표소 밖에 수십미터 줄을 서 있다.

[지혜진 기자]

이날 구신촌주민회관 사전투표소에는 관외선거인이 대거 몰리며 대기 명수가 약 50명에 달하기도 했다.

해당 투표소는 이날 오전 10시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투표를 하면서 주목받은 곳이기도 하다.


투표소 밖 수십 미터까지 이어진 관외선거인 대기줄에서 일부 선거인들은 투표용지를 촬영하기도 했다.

해당 투표소 선거관리인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내 “투표용지를 들고 줄을 길게 서 있는 게 좀 그래서 본인확인 속도를 늦춰 투표용지를 받고 바로 기표할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을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어 “투표용지를 확인하려면 기표 대기줄이 투표소 안에는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 기표 대기줄을 줄였다”며 “규정상 밖에 나가서 기다리는 것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덧붙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오후 12시 25분께까지 해당 투표소에서 투표자가 몰리는 가운데 신분확인기계(7대)와 기표소 개수(6개)가 불일치해 투표용지를 받고 대기 줄이 투표소 밖으로 이어진 사례가 발생했다”며 “사전투표 관리관이 관외사전투표자 대기공간을 외부로 이동했다”고 사건 경위를 밝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후 12시 25분부터 외부 대기를 중단하고, 본인확인과 투표용지 발급속도 조절에 나섰고, 전국에 해당 상황과 주의사항을 전파하는 한편 해당 투표소에 기표대를 추가설치하고 투표사무원도 추가 위촉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이어 선관위는 “관리상의 미흡함이 있었고, 대기중인 선거인에 대한 통제가 완벽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투표용지가 유출된 것이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법적 표현의 모호성으로 용지의 투표소 반출 가능 유무가 명확하지 않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안철 법률사무소 다안 변호사는 “투표용지를 받은 후에 투표장을 벗어났다면 비밀 투표나 투표 매수 계산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관리위원이 있다한들 투표소를 벗어나면 통제를 할 수 없기에 관련 법률 개정이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투표용지를 투표소 밖으로 반출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 투표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음선필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본인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바로 받아 투표하는 것은 신원 확인된 사람이 즉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라며 “투표용지를 들고 이탈했다가 다시 들어온 상황은 투표용지를 배부받은 그 사람이 투표하는 것인지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대리 투표가 가능할 수도 있고 관리 부실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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