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사이트] 이야기를 담다 비하인드 - ‘얼음미녀’의 열정 스매싱 - 현정화 탁구 감독 편



▣ 편집자주 = 매일경제TV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 'CEO인사이트' 8호에서는 인터뷰 프로그램<이야기를 담다>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직접 나서 촬영 후일담을 공개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현정화 탁구 감독은 "이번 인터뷰는 제 탁구 인생을 돌아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며"탁구라는 스포츠를 시청자들에게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고 밝혔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김원경 PD('김 피디의 비하인드 컷')와 아나운서 이담('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김수진 작가('김 작가의 크레딧 쿠키') 등 제작진과 출연들이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촬영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는 'CEO인사이트' 를 통해 격주 단위로 공개됩니다.<이야기를 담다>는 매주 목요일 저녁 6시 30분에 매일경제TV와 유튜브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이야기를 담다>비하인드 현정화 감독 편 전문.


◇ 김작가의 크레딧 쿠키

# 현정화의 콧대

50대 중반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 총기가 살아있는 눈매….

운동선수 최초의 화장품 모델이라는 극장의 클래스를 보여준 현정화 감독.



"화장품 모델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만 했었어요."

한국 화장품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 현정화 선수는 사내 설문조사를 통해 화장품 모델로 발탁됐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열린 미인 뽑기 대회에선 전 세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연예계 러브콜도 꽤 받았다.

"은퇴 후에 뽀미 언니 해달라고 제의가 왔는데 거절했어요."

뽀미 언니가 연예계에 진출하는 지름길이라며
방송국 담당자는 현 감독을 꽤 설득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 탁구 최고의 지도자로 남겠다는
그녀의 높은 콧대는 꺾지 못했다.

"제가 연예계로 갔으면 강호동 씨는 없지 않을까."

도도한 자존심의 탁구 여제.

탁구 선수로서 콧대만 높았으랴…진짜 콧대도 정말 높았다.

피노키오라는 별명이 왜 생겼겠는가!

# 아버지의 선물

서양 속담에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The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

직역하면 사과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즉,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는 못 속이나 보다.

현정화 감독의 아버지 현진호 씨는 1950년대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탁구 선수 출신이다.

그렇다고 딸에게 탁구를 강요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폐 질환을 앓고 계셨어요."

아버지가 탁구 선수 출신이었다는 걸 안 건 탁구부에 들어가서였다.

체육관을 지나다 보게 된 탁구가 재밌어 보였다는 어린 시절 현 감독.

DNA의 이끌림이었을까?

탁구 연습을 할 때면 체육관에 나와 공을 쳐주셨다는 아버지는 현 감독이 중학생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누구보다도 딸이 탁구를 잘 치기를 바라셨을 아버지는 현 감독의 꿈으로 찾아오셨다.

"중요한 대회가 있으면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셨어요. 꼭 전날에. 대화하지는 않는데 그냥 살아계신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버님 살아계셨네 그러면서 이제 깨요. 근데 그럴 때마다 제가 금메달을 따더라고요."

일찍 생을 마감한 설움, 탁구 선수 딸을 응원하지 못한 아쉬움, 아버지의 그 한이 응집돼 꿈으로 환생했을까?

현 감독의 메달은 총 133개, 그중 금메달은 75개다.

무려 75번 딸의 꿈에 나타나셨다면 아버지로서 당신은 최선을 다하신 거다.


◇ 이담의 뒷담; 뒷이야기를 담다

현정화 감독은 여전했다. 힘이 있었다. 날카로웠다.

과거 탁구 경기를 통해 보았던 선수 현정화는 아주 냉정해 보였다.

굳게 다문 입술.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사람 같았다.

현정화 선수의 스매싱은 달랐다. 송곳 스매싱이라 불렀다.

지금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금도 제 스매싱 받을 수 있는 사람 없을걸요?” 라고 했다.

게다가 좀 완벽한가.

메달 133개, 그 가운데 금메달이 75개.

다른 탁구 선수 입에선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 영화 코리아

현정화 선수,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많이들 91년 남북 단일팀 경기를 꼽는다.

그녀 역시 아무래도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치른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위해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남북 단일팀.

이 대회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주인공인 배우 하지원의 극 중 이름은 '현정화'였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대도, 영화 특성상 어느 정도의 허구가 들어가기에 보통은 실명을 사용하지 않곤 한다.

하지만 실명으로 설명되는 게 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아닐까? '현정화'

현정화 선수는 북한 리분희 선수를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함께 하는 동료이자 사실상 라이벌이기도 했던 사이.

"제가 먼저 언니라고 불렀어요."

북한엔 언니라는 말이 없는데도, 그 마음이 닿았던 걸까.

리분희 선수는 '언니'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고 한다.

리분희 선수를 이야기하는 현정화 감독의 눈에는 그리움이 짙게 묻어났다.



리분희 선수도 그랬다.

한 인터뷰에서 리 선수는 "현정화가 보고싶다."고 하며, 현정화 선수가 준 금반지를 아직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현정화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 없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정화야"라는 말로 입을 뗐다고 한다.

그녀는 분희 언니가 그녀와 같은 마음인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 머리에 '빵꾸'

워낙에 힘든 운동이다.

너무 힘들면 하다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현정화 감독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정도로 탁구가 재밌었다고 한다.

이 말에는 함정이 있다.

선수 현정화는 늘 이겨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경기를 나가서 6학년 언니들을 다 이겼다고 한다.

지역 대회 나가서 1등하고, 차근차근 이기고 올라와 국가대표로 세계를 제패했다.

이길 때 쾌감과 성취감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그런 탁구 천재 선수 현정화가 감독이 됐다.

하지만 생각한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단다.

감독이 되고난 후 말 그대로 머리에 '빵꾸'가 났다고 했다. 세 번이나.

병원에 갔더니 눈높이를 좀 낮추라고 했단다.

선수에서 감독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 감독 현정화의 "파이팅!"

선수 시절, 경기하며 외쳤던 현정화의 "화이팅(파이팅)!"은 참 유명했다.

힘이 실려있는,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지난 올림픽에서 그녀가 탁구 경기 해설을 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냉정해 보였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간절함이 보였다.

해설을 하는 동안 두 손을 꼭 모아 기도했다.

남의 경기에는 유독 울컥한다는 그녀.

어딘가에서 따뜻한 '파이팅'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김 피디의 비하인드 컷

현정화 감독의 첫인상은 요즘 MZ 표현으로 '지문이네'였다.

한 마디로 '냉동인간' 같았다.

"그 힘든 선수 시절도 지났고 좀 편히 살 좀 찌워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철두철미할 것 같고 무서울 것 같은 현정화 감독은 예상 외로 다정한 인상이었다.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말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멘토를 만난 기분을 주었다.

한 분야의 레전드를 만나니 '믿고 따르리오'란 마음이 절로 생겨서일까?

민첩한 스포츠 선수에게서 의외로 안락한 소파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 이는 어불성설일 수도 있겠다.

#지문 #냉동인간 #철두철미 #레전드 #안정감 #편안함 #믿음 #다정다감했던 현정화 감독의
편집돼서 볼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여다보자.

# 자신과 화해하기

현정화 감독은 선수 생활을 할 때, 운동을 잘하기 위해 근력을 키우고 체중을 조절해야 했다.

그런데 은퇴 이후에도 몸무게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현정화 : 저하고의 타협이 절대 없어야 돼요.일단 운동도 기본적으로 하고 제가 나태한 거를 좀 싫어해서 활동을 많이 하니까 살이 좀 안 찌는 것 같고 또 꾸준히 반신욕을 합니다.이제 버릇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안 하면 하루를 상쾌하게 못 시작하는 것 같아요.

난 운동을 하려면 '자신과 화해하기'가 필요하다.

부지런하지 않은 나, 편하기만 원하는 내 몸,
구석구석 아프다는 핑계와 화해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야 할 수 있는 게 운동이지 않을까 싶다.

현정화 감독은 선수 시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 화해했을까.

"자신과의 타협은 절대 없다"는 현정화 감독은 은퇴한 후에도 계속 같은 생활 루틴을 고수하고 있다.

75개의 금메달과 그랜드 슬래머로서의 성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자신과 싸운 결과이자,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했던 결단의 상징이다.

현정화 감독의 여정은 우리에게도 가능성을 심어주는 것 같다.

현정화 감독은 선수에서 멘토로, 그리고 인생의 지혜를 나누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운동과 삶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과정임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이야기를 담다, 그 후

# 탁구로 그린 인생의 스매싱

<이야기를 담다>인터뷰는 탁구 선수로서의 기록, 남북 단일팀 이야기,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제 인생의 다양한 순간들을 담백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탁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제 삶의 모든 순간을 담고 있는 특별한 스포츠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인터뷰는 제 탁구 인생을 돌아보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담 앵커에게 탁구 자세를 가르쳤던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야기 도중 라켓을 들고 일어서서 직접 움직여본 경험은 신선했고, 탁구라는 스포츠를 시청자들에게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습니다.



본 방송은 제가 해외에 있는 동안 방영되어 바로 시청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이후 파일로 받아서 본 방송은 자료가 꼼꼼히 정리되어 제 인생의 여러 순간을 모아 보여주는 깔끔한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제게 이런 소중한 기회를 주신 제작진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출연자분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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