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절대 상대 못해”…세계 7,8위 완성차업체, 전격 합병 이유는

카를로스 곤 구조조정 이후
닛산, 기술보다 효율에만 집착
혼다 해외업체 협력관계 청산
규모의 경제로 미래차 승부수

대만 폭스콘, 닛산 지분에 눈독
日자동차업계 총력 대응 나서

우치다 마코토 닛산 최고경영자(CEO 왼쪽)와 미베 도시히로 혼다 CEO가 지난 8월 도쿄에서 포괄적 업무 제휴를 발표하며 손을 맞잡고 있다.

[EPA = 연합뉴스]

“기술의 닛산은 더 이상 없다.

싸구려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


혼다와 닛산자동차의 경영 통합 배경에는 2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최고경영자(CEO)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1999년 경영위기를 겪으며 프랑스 르노와 손을 잡았던 닛산은 곤을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곤은 극적인 실적 개선을 이끌어냈지만 그 배경에는 철저한 원가 절감이 있었다.

닛산을 정점으로 함께 기술을 개발하던 ‘계열’ 형태의 협력업체는 사라졌고, 싼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만 살아남았다.

기술보다 원가를 더 중요시한 결과다.

저가 제품을 공급하는 중국 협력업체가 늘면서 코로나19 사태 등 중요한 시기에 공급망이 붕괴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기에 곤은 전기차(EV) 개발에만 집중하며 하이브리드차(HV)에는 소홀히 했다.

이는 최근 EV 인기가 꺾이고 HV가 다시 붐을 일으키는 미국 시장에서 낙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곤의 빈자리를 메운 경영진도 상황은 비슷했다.

2017년 사장에 오른 니시카와 히로히토나 2019년부터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치다 마코토 사장도 미래 비전을 그리기보다는 당장의 실적 만회에만 급급했다.

2019년 7월 1만2500명, 지난달 9000명 감원 발표와 20% 생산능력 축소는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여기에 더해 시장에서는 최근의 실적 부진으로 닛산이 12개월 내 파산할 수 있다는 소문마저 돌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은 “실무도 모르고 현재 경영에 책임져야 할 우치다 사장은 연임이 결정되고 임직원은 9000명이나 잘려 나가게 됐다”며 “임원의 재임 기간이 너무 길어서 젊은 사람이나 중간 간부가 승진하지 못하고, 이는 장기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인재가 자라지 못하는 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급변하는 모습이다.

전통적인 업체가 아직 건재하지만, EV와 자율주행 기술을 장착한 미국 테슬라나 중국 BYD 등 신생 업체에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올해 연간 판매량에서 BYD는 425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드, 혼다, 닛산 등 쟁쟁한 전통 제조업체를 모두 제치고 세계 7위가 예상되는 숫자다.


혼다는 미래차 시장을 위해 그동안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협력해 왔다.

2013년엔 수소전기차 기술 제휴를 맺었고, 2020년엔 저가형 EV 공동 개발·생산에 합의한 바 있다.

또 혼다는 GM의 자율주행 관련 자회사인 크루즈에 8억5200만달러(약 1조2200억원)를 출자하기도 했다.


이런 협업 관계는 양사 의견 차이로 삐걱대다 최근 모든 관계가 청산됐다.

혼다는 GM의 자율주행 전용차 ‘크루즈 오리진’을 통해 도쿄에서 2026년 무인택시 운행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또한 백지화됐다.

반면 GM은 현대차와 손을 잡으면서 혼다만 외톨이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자동차 업계는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다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업체들 간 노력이 혼다·닛산 경영 통합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번 통합을 통해 혼다는 연간 판매 400만대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몸집을 불릴 수 있게 됐다.

또 양사는 서로 강점을 가진 기술 확보와 함께 미래차 개발 투자금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일각에선 이번 경영 통합의 또 다른 배경으로 닛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을 꼽는다.

이러한 움직임이 기업 문화 차이로 경영 통합을 탐탁지 않게 여긴 혼다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8일 “지난해 EV 사업 참여를 선언하고 한때 닛산의 ‘넘버 3’였던 세키 준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영입했던 대만 폭스콘이 닛산 경영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닛산 지분 매입 후 경영에 참여해 EV 제조 노하우와 글로벌 판매망을 배우려던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폭스콘이 검토한 것은 프랑스 신탁은행이 보유한 닛산 주식이다.

1999년 경영난에 빠진 닛산의 지분 43%를 인수했던 르노는 지난해 이를 15%로 낮추고 나머지 지분을 단계적 매각을 위해 프랑스 신탁은행에 예치해 둔 상황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이 지분이 22.8%에 달하는데, 여기에 폭스콘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닛케이는 “닛산은 폭스콘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인수 방어를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 나섰다”며 “혼다도 지난 8월 맺은 닛산과의 포괄적 업무 제휴가 백지화될 것을 우려해 최악의 경우 닛산의 백기사가 되는 것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폭스콘뿐 아니라 닛산 지분 2.5%를 보유해 최근 5대 주주가 된 행동주의 투자펀드로 알려진 에피시모캐피털매니지먼트의 움직임도 수상쩍었다.

닛산 실적 부진을 틈타 회사 측에 다양한 압박을 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임기를 시작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움직임도 혼다와 닛산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임기 첫날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지역에는 양사의 완성차 공장과 부품 공장이 상당수 있다.

공약대로 관세가 인상되면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은 피할 수 없다.


현재 혼다는 캐나다에 14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EV 공장과 배터리 셀 공장을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닛산은 멕시코에 연산 70만대 규모의 공장과 함께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연산 23만대 규모 합작 공장이 있다.


한편 이번에 혼다와 닛산의 경영 통합이 이뤄지면 일본 자동차 업계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도요타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자회사인 다이하쓰 외에 지분 관계인 스바루와 마쓰다, 스즈키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도요타는 이들과 함께 미래차 개발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혼다·닛산·미쓰비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그룹이 가세할 전망이다.


다만 합병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은 부담이다.

최근 닛산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실적이 급감한 상황이라 지주회사 출자비율에서 원만한 합의를 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양사를 대표하는 경영진 구성과 극과 극인 문화적 차이를 없애기 위한 노력 등 다양한 후속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픽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