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정책콘퍼런스 ◆
지난 13~15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정책콘퍼런스(WPC) '탈세계화와 재세계화' 세션에 베르트랑 바드레 전 세계은행(WB) 최고재무책임자(CFO),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 모스크바 후기산업연구센터 소장, 피에르 자케 프랑스 ENPC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세바스티앵 장 프랑스 크남(CNAM)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학교 지경학연구소장(왼쪽부터)이 참석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WPC 사무국


"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모두가 아는 '게임의 법칙' 자체가 사라진 상황이다.

" 제17회 세계정책콘퍼런스(WPC)가 열린 지난 13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파크하얏트. 이곳에 모인 세계 석학들은 "기존의 통상 질서는 끝났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사회는 이제 기존 규칙들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불확실성을 키운 직접적 원인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우선적으로 지목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선거운동 기간 10~20%의 보편관세와 중국에 대한 60% 이상의 고율관세 적용을 공약한 바 있다.


빈센트 코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검토국 국가분석실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급격히 증가했다"며 "많은 사람이 무역전쟁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는 국제사회를 '탈세계화(de-globalization)'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날 세션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 즉 '재세계화(re-globalization·세계화의 재편)'가 촉진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에르 자케 프랑스 ENPC대 교수는 "불확실성의 증가로 인해 각국은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축소)에 나섰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며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디리스킹 전략은 역설적으로 국가 간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보호주의가 심해질수록 해외 시장의 폐쇄성을 우려한 기업들이 현지 생산에 대한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디리스킹 전략이 탈세계화 흐름으로 귀결되는 대신,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러한 재세계화를 향한 상호 의존성은 경제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경제를 무기화하려는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

스즈키 가즈토 도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국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상호 의존성을 협박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한 국가가 상호 의존 관계에서 홀로 배제될 경우 치명적인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서방사회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는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상호 의존성을 무기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어 스즈키 교수는 "앞으로의 세계화는 '지경학(geo-economics)'이라는 새로운 틀로 정의될 것"이라며 "경제적 논리보다 지리적 요인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가 간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면, 이제는 지리적 위치가 경제 정책의 전략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세계화 질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케 교수는 "세계화는 단순히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 연구 협력, 전염병 대응 등 인류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도 개별 국가의 노력보다는 세계적 공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앞으로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자케 교수는 "세계는 다극 체제(multi-polarity)로 전환되고 있다"며 "중견 국가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중견국을 포함해 같은 뜻을 가진 국가들이 협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며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을 통해 다자간 무역 거버넌스를 활성화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이 직면한 도전 과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코엔 실장은 "한국과 일본 같은 국가들은 에너지 보조금 문제로 인해 공공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재정 압박 속에서도 고령화 사회 대응,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국방비 증가 등 지출이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장피에르 카베스탕 홍콩 침례대 교수는 "청년 세대를 위한 기회 창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WPC는 국제 관계 싱크탱크인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가 주최하는 콘퍼런스다.

IFRI는 프랑스 외교부 산하 '분석 및 예측센터' 등을 지휘한 티에리 드 몽브리알 회장이 이끌고 있다.


[아부다비 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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