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 가결 이후 ◆
'세계적 정치철학 석학'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진행된 매일경제·MBN과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로 꼽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의 비상계엄령 사태 이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면서도 "탄핵안 가결만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최종 단계는 한국 정치의 극단적인 분열을 이겨내는 데 있다는 의미다.


그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비상계엄령 선포·해제,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속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적 덕목은 서로의 이견을 공적 영역에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샌델 교수는 "미국·유럽의 많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정치적 분열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분노와 극단, 비난과 욕설이 아닌 예의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진정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만 민주주의를 쇄신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도전이며, 여당과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샌델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에서 진행됐고,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추가 질의응답을 서면으로 주고받는 형태로 이뤄졌다.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2009년) '공정하다는 착각'(2020년) '민주주의의 불안'(1996년) 같은 책을 펴내며 평생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기존 정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탐구해왔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비상계엄령 사태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으로 누적돼온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는 한국의 비상계엄령 소식에 "많은 사람이 그랬듯 나 역시 이 사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으며 계엄령 선포를 "민주주의의 규범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샌델 교수는 국회가 만장일치로 계엄령 철회를 의결한 것 자체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신호'라고 표현하며 "한국 시민이 평화적인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리더십 전환 등) 현재의 위기가 해결되는 과정은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을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샌델 교수는 "매우 좋은 신호들이 있지만 아직 불확실한 순간에 처해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의 비상계엄령 선포를 지켜보며 2021년 1월 6일 미국에서 벌어졌던 의회 난동 사건을 떠올렸다고 했다.

두 사건이 모두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한 이후 연방수사국(FBI) 등 법 집행기관을 이용해 보복을 가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미국 민주주의도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샌델 교수는 "나는 한국이 계속해서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낙관하고 있고, 이 위기에서 표출된 민주적 시민 에너지가 한국만의 해결책이 아니라 전 세계에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세계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에 희망과 영감을 주는 방식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문화적인 존재감을 세계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최근 수십 년간 경제적인 성공으로, 또 한편으로는 문화·대중문화적인 존재감으로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아왔다"며 "한국 영화와 TV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평등,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와 같은 우리 시대 가장 큰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민주주의를 구축해왔다"면서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나는 한국이 이 위기를 잘 해결해 지난 40년간 한국의 놀라운 민주주의 성취를 입증하고, 세계 민주주의 발전의 위대한 사례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시민은 선거일이나 투표를 할 때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있을 때마다 사회운동이나 시위를 통해 시민의 목소리가 들려야 한다.

다만 폭력 없이, 예의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샌델 교수
1953년생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71)는 같은 대학 교수였던 존 롤스가 1970년대에 정립했던 '정의론'에 도전장을 내며 '정의'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운 세계적 석학이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하버드대에서 '정의'라는 과목을 수십 년간 강의해왔다.

그는 특히 2009년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출간하며 '정의'와 관련해 전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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