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공장 연구원과 수의사
두 친구 의기투합해 회사 설립
국내 첫 돼지도축 자동화 성공
수시간 걸리던 작업 30초에 끝
누적 투자 금액도 80억원 달해
“도축장 인력난 해소 기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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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로보스 대표 |
목과 내장이 적출된 돼지 한 마리가 도축장에 놓여 있다.
도축장 직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로봇의 칼날이 돼지의 사체 위를 깔끔하고 부드럽게 지나간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돼지의 몸체는 반으로 갈린다.
세척을 하고 등급이 매겨지면 정육점으로 가고, 소비자들은 밥상에서 맛있는 돼지고기를 즐긴다.
이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설립된 로보스는 도축의 자동화를 가능하게 하는 ‘돼지 도축 로봇’을 생산하고 있다.
박재현 로보스 대표는
LG전자와 현대로보틱스 출신으로 스마트공장 시스템 연구원이었다.
고교 동창이자 수의사 친구인 박원석 이사와 의기투합해 로보스를 설립했다.
고령공판장과 부경양돈농협조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박 이사가 박 대표에게 “도축장은 인력난과 운영난이 심각해 자동화 로봇이 꼭 필요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전한 게 창업의 싹을 틔운 계기다.
박 대표는 이후 도축 자동화 로봇 기업을 설립하고, 박 이사는 친구로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합류했다.
물론 해당 사업의 진정성과 성공 가능성도 높이 평가했다.
박 대표는 “대형 도착장에서는 일부 자동화를 하고 있지만 유럽 회사가 독점하고 있다”며 “돼지고기는 한국인 먹거리 1위일 정도로 인기가 많기 때문에 도축 로봇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하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설명한다.
로봇 개발의 가장 큰 난관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돼지였다.
박 대표는 “돼지는 크기도 다양할뿐더러 무게도 60㎏에서 150㎏까지 천차만별이고 계속 움직여 로봇 개발까지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형 생체 AI를 연구하고 개발했다”고 말했다.
로보스의 비정형 생체 AI 시스템은 라이다 비전(Lidar Vision·빛을 쏴서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과 물체 탐지 기술을 활용해 도체의 비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체 기술을 이용해 도체를 정확하게 절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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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스가 제작한 이분도체 로봇 PSP-K가 도축기업 중앙산업이 운영하는 충남 예산 도축장에서 도체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로보스] |
로보스가 생산하는 돼지 도축 로봇은 크게 목 절개 로봇, 복부 절개 로봇, 이분도체 로봇 등 세 가지 종류다.
각각의 로봇은 해당 과정을 단 8초 만에 수행할 수 있다.
목 절개와 복부 절개, 이분도체(도축 후 머리와 내장 등을 떼어내고 남은 몸체를 목 부위에서 꼬리까지 반으로 갈라 두 부분으로 분리하는 것)의 세 가지 과정을 합쳐도 30초가 안 걸리는 셈이다.
돼지 도축 공정은 방혈, 목 절개, 복부·앞가슴 절개, 항문 절개, 내장 적출, 이분도체, 머리 절단, 정선·세척, 계량, 등급 판정 순으로 진행된다.
AI는 돼지 뼈와 근육 위치 등 300만개 데이터를 분석해 절개 좌표를 만든다.
이후 AI가 돼지를 스캔해 좌표를 찍으면 로봇이 좌표를 따라 도축을 시작한다.
각 과정은 하드웨어와 AI 기술로 정밀하게 제어되며, 각 공정마다 세정·스팀·살균 작업도 병행해 쾌적한 환경이 유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고질적인 문제였던 도축업자의 안전이나 위생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현재 국내 도축업자들은 사고 위험이 높은 작업 환경, 열악한 환기·배수 문제로 소위 ‘똥물’에 발을 담그고 일하고 있다”면서 “자동화 로봇을 통해 작업 환경 안전성을 높이고 노동 강도를 줄이며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이어 “AI와 로봇을 더욱 고도화해 도축장 전체 공정의 90% 이상을 무인화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로보스는 농협중앙회 리드투자로 에크테크펀드 운용사들의 누적 투자금액이 78억원에 달한다.
올 하반기 시리즈B라운드 투자 250억원도 펀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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