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제왕적 리더’ 후버 사망 후
미 희외 FBI 국장 임기개혁 고심
‘독립 보장+권력화 방지’ 구현에
행정부 지명직 유일 ‘10년’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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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5월 2일 자택에서 자다가 숨질 때까지 48년 간 FBI를 이끌었던 에드거 후버(1924~1972년)의 초임 및 후기 모습. <사진=FBI·NPR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0일 충성파 측근인 캐시 파텔을 연방수사국(FBI) 초대 국장으로 지명하면서 미국 정계가 들끓고 있다.
현 국장은 2017년 트럼프 당선인이 제45대 대통령으로 선임한 크리스토퍼 레이다.
현행법 상 FBI 국장 임기는 다른 행정부 직위보다 긴 ‘10년 단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 임기(4년·한 번의 연임 가능)보다 긴 것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뽑은 FBI 국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강력한 충성 의지를 확인한 법조인인 캐시 파텔을 임명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1일(현지시간) 이례적으로 백악관까지 나서서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2027년까지 보장된 현 국장의 임기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미국 주요 매체들도 의회와 법조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10년이라는 FBI 국장의 임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FBI 국장에게 보장된 10년의 임기가 어떤 무게감을 갖고 있기에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전 광폭 행보에 로키를 유지했던 백악관까지 들고 나섰을까.
그 답은 바로 ‘후버 전 국장’과 ‘워터게이트 사건’에 있다.
FBI 국장은 미 행정부 내 임명직 중 유일하게 10년의 임기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 임기를 두 번 연임할 수 있는 기간(8년)보다 더 긴 임기가 부여된 핵심 배경은 초대 국장인 존 에드거 후버 때문이다.
그는 1972년 사망 때까지 무려 48년간 국장직을 누리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재임 중 취득한 권력자들의 약점을 가지고 자신의 임기를 연장해왔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FBI는 홈페이지에서 이런 굴욕적 이야기는 배제한 채 후버 국장에 대해
“후버의 나이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양당의 대통령들은 후버를 계속 수사국 수장(helm)으로 뒀다. 1972년 5월 2일, 후버가 잠든 채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48년 동안 FBI를 이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후버 국장의 사망 이후 국장 임기를 두고 고심하던 의회에 1976년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은 중요한 반전이 됐다.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FBI 국장으로 지명한 패트릭 그레이가 워터게이트 수사와 관련된 문서를 파기하고 닉슨 행정부에 수사 관련 브리핑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FBI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졌다.
결국 의회는 1976년 범죄통제법을 개정해 FBI 국장을 10년 단임으로 하고 현직 국장의 재임용을 금지토록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화를 막으면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적의 임기 조합을 대통령 임기(연임에 따른 최장 8년)보다 2년 더 긴 10년 단임으로 결정한 것이다.
미 상원 사법위원회는 당시 법 개정 취지를 설명하는 보고서에서
“이 법안의 목적은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는 연방수사국장이 행정부의 상급자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 두 번째는 FBI 국장이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무책임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현실 정치에서 충돌할 수 있는 두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1976년 미 의회가 내린 ‘10년’이라는 결과물은 지금으로써는 상당히 긴 임기이지만 48년을 재직한 후버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입법 당시에는 파격적인 개혁 조치로 해석된다.
트럼프 당선인도 10년이라는 임기 보장은 너무 길다고 보고 현행법을 무시한 채 FBI 수장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통제법 상 현 레이 국장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현 레이 국장을 해고해야 한다.
문제는 임기 10년 유지라는 전통을 무시할만큼 타당한 사유가 설명되지 않을 경우 상당한 정치적 후폭풍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론의 비판 목소리가 거세질 경우 공화당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새 국장에 대한 상원 인준까지 득해야 하는데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대안까지 내놓은 상태다.
공화당을 상대로
‘휴회 인준(Recess appointment)’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휴회 인준은 상원 휴회 중 대통령이 연방 공무원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의회가 쉬는 동안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제도 악용 논란에 눈을 감아주면 청문 인준이 어려운 문제적 인사들을 휴회 기간 동안 몰아서 임명하겠다는 의미다.
2017년 1월 닻을 올린 ‘트럼프 1기’ 때는 부적절한 자질 시비로 민주당의 반발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취임 첫날 상원 인준을 통과한 각료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과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 두 명에 그쳤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 시작 때는 트럼프 탄핵안 처리 등으로 상원 인준 처리가 지연되면서 각 부처가 장관 없는 ‘대행’ 체제로 출범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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