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돋보기]크리스틴컴퍼니 이민봉 대표
국내 부자재 제조사 규합해서
다품종소량생산 플랫폼 상용화
K패션 브랜드 제품개발 속도전 도와
K뷰티처럼 글로벌 확장 지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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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
사양 산업도 신기술과 결합해 부활할 수 있다.
한때 부산 지역 수출의 40%나 차지해 전성기를 누렸던 신발 산업 얘기다.
인공지능(AI)기술로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신발 디자인 시안이 ‘뚝딱’ 나오고, 이를 전국 각지의 제조공장 네트워크와 연결돼 제조단가도 계산해준다.
최소 1만개 이상 주문하고, 8개월은 족히 기다려야 했던 신발 제조업계에서 최소 500개 물량을 2개월 내 납품해주는 ‘도깨비방망이’를 부산 출신 신발 제조 플랫폼 업체가 만들어냈다.
AI 기반 신발 제조 플랫폼 ‘신플’을 상용화한 크리스틴컴퍼니다.
이 회사를 창업한 이민봉 대표(38)는 부산 신발 부자재 제조업체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신발공장을 놀이터 삼아 성장했고, 이웃에도 관련 공장을 하는 친구네 부모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 때 망한 그 신발공장에 미련이 남았다.
신발산업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신사와 W컨셉트 등 새로운 패션 유통 플랫폼 덕에 1만3000개의 새로운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패션 슈즈’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죠. 2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도 잘 팔리는 것을 보니 인건비 경쟁에서 동남아에 밀린 국내 제조사에도 어떤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죠.”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이 대표는 본격 창업 2년 전부터 신발 부자재 제조사들을 돌아보며 시장 조사를 다녔다.
이 과정에서 사업 비전을 제시하면서 막 사업을 접으려던 제조업체 2~3세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발은 제조 공정만 100개가 넘는데 밑창과 깔창 등 제조설비가 따로따로라 적어도 10곳 이상 제조공장과 협업해야 한다.
수도권에 주로 있는 브랜드업체들은 공장 정보도 찾기 힘들어 심지어 조단위 매출을 내는 패션 대기업도 자체 공장을 갖추지 않고 에이전시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지역 제조업체들 정보를 가진 1인 에이전시가 카르텔을 형성하고 30년 이상 고착된 폐쇄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 1만개 이상 물량을 선금 100%로 주문받고 패션기업들은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작 영세 제조사는 대금을 제때 못 받아 부도가 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지난 2019년 창업한 이래 이 대표가 직접 발로 뛰면서 전국 1020개 정도 관련 제조사 중에서 500곳 이상으로 ‘진성’ 데이터베이스로 쌓아갔다.
“최소 2시간 이상 공장주와 대화하고 제가 직접 현장 기계설비 라인도 보고 정직원이 몇이고 과거에 어떤 신발을 생산했는지 제조 역량을 파악해서 데이터를 쌓아갔죠”
의류로 출발한 패션 브랜드들은 수익성 때문에 신발 영역으로 확장하는게 수순이지만 자체 신발 디자이너를 갖춘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서 신발 디자인 과정을 갖춘 대학도 경남정보대 단 한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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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컴퍼니가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신발 디자인 플랫폼 ‘신플’ 초기 화면 <홈페이지> |
이런 틈새를 보고 개발한 ‘신플’은 AI 머신러닝으로 모은 신발 트렌드를 기반으로 디자인하는 시스템이다.
‘신발 제작을 심플하게’란 모토를 담아 작명됐다.
간단한 이미지로도 견적을 의뢰하면 최신 트렌드를 흡수해서 패션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녹여낸 디자인을 생성해 낸다.
효율적 공정을 할 업체를 물색하고 합리적 가격도 찾아준다.
이례적으로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TIPS(기술혁신개발사업)에 선정됐다.
특히 한국디자인진흥원 지원을 받아 신발 디자이너들 니즈를 조사하고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 대표는 초기에 자체 브랜드(PB) ‘크리스틴’을 만들어 시장성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인기를 얻어 국내 대표 백화점에 입점했고, 추가로 애슬레저 슈즈 전문 브랜드 ‘에콰’도 시작했다.
사내에 운동생리학 박사가 있어 요가나 필라테스 등 기능성 신발 연구개발도 강화하고 있다.
초기엔 사양산업이라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네이버가 선뜻 투자한 이후
아주IB투자 등 투자도 잇따라 누적 140억원이나 유치했다.
그를 믿고 제조업을 승계한 친구들도 함께 웃었다.
이 대표는 “올해부터 ‘신플’이 정식 상용화됐는데 프랑스에서 인정받은 토종 명품 브랜드 ‘김해김’을 비롯해 벌써 30개 브랜드를 수주했고, 올해 예상 매출액(25억원)의 절반을 넘기게 됐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최근 일본 종합상사도 미팅 문의가 오고 있어 최근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해외에도 유사 업체가 없는 상황이라 국내 테스트를 마치면 더 키워서 해외로 진출할 것”이라며 “대학과 연계해서 신발 디자인 등 관련 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화장품 업체들이 든든한 원료제조업체들 덕분에 아이디어만으로 빠르게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며 K뷰티 열풍을 불러 일으켰듯 K슈즈 생태계가 뜨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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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앞줄 가운데)가 직원들과 함께 자사 신발 제조 플랫폼 ‘신플’로 제작한 신발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크리스틴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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