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도덕적 해이 극심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근로의욕 꺾는 ‘퇴직3종세트’
국회·노동계는 개편 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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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서울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대기하고 있다. [매경DB] |
실업급여 부정수급 이슈가 끊이지 않고 터지고 있다.
구직활동을 허위로 보고하고, 위조자료를 제출해 수령하고, 사업자와 공모해 짬짬이로 청구하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섰다.
실업급여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23회에 걸쳐 9400만원이나 받았다고 한다.
9000만원 이상 받은 사람도 5명이나 됐다고 하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직장을 성실히 다니는 나는 바보인가’라는 자괴감이 든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자발적으로 퇴사해도 실업급여 받는 방법’, ‘구직활동 안 하고 실업급여 받는 법’ 같이 편법 수급 방법을 알려주는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수두룩하다.
어떤 영상을 조회수가 30만회에 달했다.
실업급여는 직장을 잃은 비자발적 실업자의 생계를 지원하고, 재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제조다.
그런데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면서 실업급여만 타먹는 ‘배짱이’ 구직자를 늘리고 있으니 문제다.
이같은 현상은 만성적인 중소기업 인력난을 더욱 부추기는 주요 요인으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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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DB] |
전문가들은 한국의 실업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손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저임금과 실업급여가 별반 차이가 없어지면서 많은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꺾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를 최저임금의 80%에 연동되는 하한액이 설정되면서 올해 하한액은 월 최소 189만원이다.
최저임금이 월 206만원인 것을 감안할 때 4대 보험료와 세금, 출퇴근 교통비 등을 빼면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실업급여보다 조금 더 받으면서 직장에서 눈칫밥 먹느니 그냥 몇달 간 쉬면서 실업급여를 받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고용보험료를 평생 내면서 한 번도 안 타간 사람과의 형평성·공정성 이슈도 있다.
물론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한다고 모두 부정수급자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임금 근로자나 일용직 근로자 같이 노동시장 취약계층은 일의 특성상 반복 수급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핵심 고용안전망인 실업급여 제도가 실업자들이 구직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루 빨리 일자리를 얻는 것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구직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
그런데 걱정이다.
고용노동부가 반복 수급 시 실업급여를 최대 50% 삭감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국회 상황과 노동계 반발을 감안할 때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 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제도 외에도 중소기업 현장에서 반드시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제도가 있다.
실업급여를 포함해 이른바 ‘퇴직 3종 세트’라고 불리는 것이다.
1년에다 딱 하루만 더 일해도 1년 차 11일, 2년 차 15일을 비롯해 총 26일의 연차를 사용하거나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한 연차 제도와 직전 3개월 급여로 퇴직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그것이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퇴직 사유를 권고사직으로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면 회사 홈페이지에 댓글 테러를 하고, 1년에다 하루 더 일하고 퇴사하면서 26일치 연차수당을 요구하며, 퇴직금을 올리기 위해 직전 3개월 간 몰빵 야근을 하는 꼼수가 현장에서 난무하고 있다.
퇴직 3종 세트 탓에 ‘메뚜기’ 취업족이 양산되고 있다는 비난에도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소기업계에선 지나친 복지가 오히려 취업을 가로막는다고 지적한다.
과잉 복지보다는 중소기업을 보다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실업급여 예산을 줄이는 대신 ‘채움공제’처럼 일할 의지가 있는 청년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늘려야 한다.
고재만 벤처중소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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