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학원가 원어민 선생님 이야기인데요, 지금 수강생들 중 30%가 전공의래요. 전공의뿐 아니라 대형병원 교수님들도 '미국 의사시험 정보 좀 줘봐라' 하셔서 놀랐습니다.

"
세계가 극찬하고 배우고 싶어 했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것이 2월 1일이니, 지난 8개월 동안의 일이다.


정부도 의료계도 '필수의료를 살리자'는 출발선은 같았다.

그러나 의대 정원 증원 갈등으로 불거진 '전공의 공백'이 예상을 깨고 장기화하면서 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전국적인 '의료 공동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 국민의 몫이라는 점이다.


가운을 벗어던진 전공의들은 어디로 갔을까.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9일을 기준으로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는 총 9016명이다.

이 중 35%인 3114명이 다른 의료기관에 재취업해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부분 동네 의원급이고, 큰 병원 중에서는 요양병원이나 한방병원 위주였다.


나머지 65%의 상황은 취재 과정에서 알음알음 들을 수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젊은 남자 전공의들은 내년 3월 군 입대를 계획하고 몸 만들기나 여행, 휴식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구직 중인데, 해외 병원 취업이나 비의료기관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의대생이나 고등학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뛴다는 전공의도 있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부도 의사 선배들도 MZ세대 전공의들을 너무 몰랐던 게 이번 사태의 원인인 것 같다"면서 "정부도 고민이 많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한 인재들을 이대로 두는 것은 국가적 낭비인 만큼 전향적 자세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전공의들이 맡았던 주 80시간 이상 업무를 전문의들이 떠안으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버티던 이들마저 의료 현장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교수(전 학장·원격의료학회장)는 "대한민국 의료가 서양의학 도입 100년 만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면서 "지난주 뉴스위크가 발표한 전 세계 병원 평가에서 암 치료 분야 10등 안에 한국 병원 3곳이 포함됐는데, 의정 갈등을 봉합하지 못한다면 내년 평가에는 1곳도 못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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