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불경기가 지속되며 벤처투자 환경이 악화된 가운데 투자 집행을 거의 하지 않는 이른바 '깡통 투자사'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매일경제가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의뢰해 받은 중소벤처기업부 자료에 따르면 1년 동안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벤처투자사(벤처캐피털(VC)·액셀러레이터(AC))는 2018년 7개에서 지난해 36개로 늘어 5년 새 5배 넘게 급증했다.
심지어 2년 연속 단 한 건도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투자사는 지난해 기준 16개였고, 3년간 투자하지 않은 회사도 4개에 달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벤처투자사는 지난해 기준 총 246곳으로, 전체의 15%가 '깡통 벤처투자사'인 셈이다.
한 중형 VC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금리가 낮아져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신규 투자사 설립이 늘었지만, 탄탄한 기존 투자사와 달리 신규 투자사는 경기 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유의미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벤처투자사 대표는 "어려운 경기 탓에 투자 집행에 대한 보수적인 의견이 회사 내부에 팽배해지면서 지난해 투자를 한 건도 집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벤처·스타트업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면서 투자 회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며 "1~2년 투자를 안 한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잠시 투자를 멈추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벤처투자사가 장기간 투자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벤처투자 촉진법에 따르면 중기부 장관은 벤처투자사가 등록 후 3년이 지나기 전까지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상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집행하지 않은 경우 △등록 취소 △6개월 이내 업무정지 명령 △시정 명령 △경고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실제 2016년과 2020년 각각 1개 벤처투자사가 등록이 취소되기도 했다.
한편 벤처투자 혹한기는 올해 상반기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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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씨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VC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총 1조3548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1조4986억원) 대비 9.6%, 지난해 하반기(1조7234억원) 대비 21.4% 하락했다.
특히 올 상반기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라운드(시드~시리즈A) 투자 건수는 376건, 금액은 910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 29% 줄었다.
투자 회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회수 기간이 긴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대형 VC 대표는 "투자금 모집이 어려운 시기이다 보니 성공할 만한 확실한 기업에만 투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중형 VC 대표는 "VC끼리 인수·합병(M&A)을 하거나 아예 라이선스를 반납하려고 준비 중인 투자사들도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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