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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구 JR하마마츠쵸 인근 대형 재개발 사업인 ‘블루 프런트 시바우라’의 완성 조감도. [도쿄 = 이승훈 특파원] |
내년 2월 준공을 앞둔 일본 도쿄의 ‘블루 프런트 시바우라’ 프로젝트. 미나토구 JR하마마츠쵸역 인근 대형 재개발 사업으로 사업비만 4000억엔(약 3조7500억원)에 달한다.
이곳에는 사무실과 호텔, 상업시설, 주거시설이 한꺼번에 들어서는 높이 약 230m의 쌍둥이 타워가 개발 중이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남측 S동 25층의 ‘도쿄 워케이션(TOKYO WORKation)’이다.
연면적 5000㎡에 달하는 공간이 오롯이 입주기업만을 위해 사용되는데, 핵심이 도쿄만으로 뻗어있는 ‘스카이라운지’ 테라스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일과를 마치면 바다를 보며 운동하거나,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라는 저서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첨단 기술자와 예술가, 전문직 등을 ‘창조 계급’으로 정의하고 이들을 도시 경쟁력으로 주목한다.
예전 산업사회는 생산과 소비의 집적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중시했고, 따라서 기업과 인재 유치 조건이 물류나 노동 같은 기능에 집중됐다.
하지만 정보기술(IT)처럼 창조성이 필요한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면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혁신이 더 중요하게 떠올랐다.
도시공간도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한곳에 모아 제공하는 방향으로 기본 콘셉트가 바뀌고 있다.
AT커니를 비롯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이 발표하는 도시경쟁력 지표 체계에도 이 같은 경향은 뚜렷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도시경쟁력은 국내총생산(GDP)을 포함한 경제성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제 삶의 질이나 행복, 사회 통합, 사회자본이 주요 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계 여러 도시는 이 같은 트렌드 변화에 맞춰 공간 배치를 바꾸고 있다.
도시를 생활권으로 나누고 각각의 권역 안에 업무, 여가, 주거 공간을 집중 배치하는 방식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발생이후 기존 오피스 시장 침체로 복합개발 수요는 더 커지고 있다.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20.1%로 1979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는 10년 전 도입한 국가전략특별구역(규제철폐지역) 효과로 마루노우치를 중심으로 북쪽의 니혼바시, 동쪽의 야에스, 도라노몬·롯폰기·시부야에 이르기까지 54곳이 대형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도심 곳곳에서 진행 중인 이들 대형 개발사업은 하나같이 ‘WLP(일·거주·놀이)’ 콘셉트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도쿄 천지개벽’하면 대개 100여층대 초고층 건물과 23조엔으로 추정되는 건설투자 효과를 떠올리지만, 개발의 진정한 핵심은 ‘인재 유치와 혁신 활동’을 위한 공간 개조라는 뜻이다.
작년 모리빌딩이 재개발을 통해 완성한 도라노몬힐스의 공간 배치도 입주한 인재 간 상호작용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 최근 방문한 이곳 비즈니스타워 4층 ‘아치(ARCH)’ 오픈 스페이스에서는 다양한 세미나가 잇따라 열리고 있었다.
현재 아치에는 대기업 신규사업 개발팀 144개가 입주해있다.
인원만 900명이 넘는다.
지난 4년 가까이 이곳에서 탄생한 신규 프로젝트가 230건에 달한다.
연간 약 220건의 내부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이를 통해 입주사들이 교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응원한다.
아치 바로 아래층 ‘도라노몬 요코쵸’의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도 비슷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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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구 도라노몬힐스 비즈니스타워 4층에 위치한 아치(ARCH) 카페&바. 아치 멤버 뿐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개방감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도쿄 = 이승훈 특파원] |
모리빌딩이 초기에 개발한 롯폰기힐스도 7층부터 48층까지 사무실이 입주했고, 5층에 식당이 모여 있다.
그러나 한층을 통째로 비워 대기업 신규 사업팀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바로 아래층에 식당과 다양한 휴게 공간을 넣은 것은 도라노몬힐스만의 특징이다.
복합개발 공간의 목적이 더 세분되고, 공간끼리 동선은 더 짧아지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셈이다.
아치 내부 회의실과 공동작업실, 사무실을 복잡하게 배치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미로 같은 레이아웃에 입주자들도 길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고, 사무실에 가기 위해 휴게공간과 세미나실, 회의실을 계속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 지나가다 우연히 오픈된 세미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거꾸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다케다 신지(竹田 真二) 모리빌딩 영업추진부장은 “혁신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외부와 교류해 빌드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입구의 카페와 바를 아치 회원이 아니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열어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블루 프런트 시바우라 프로젝트를 맡은 노무라 부동산의 베에카 호리 기업커뮤니케이션 담당도 “빌딩 안에서 가장 가치있는 공간을 입주기업 직원들의 ‘직주락’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것”이라며 “이들끼리 활발하게 상호작용해 보다 좋은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탓에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이던 일본 경제도 4차 산업혁명 위주로 많이 바뀌고 있다는 귀띔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스타트업 정보사이트 스피다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해외 벤처캐피털(VC)이 일본 스타트업에 출자한 금액이 225억엔(약 2072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작년 같은 기간 보다 약 69% 늘어난 수치다.
일본 외에 미국,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도 탈산업화가 가속화된 1970년대 이후부터 직주락 근접 도시로 삶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을 이미 진행 중이다.
도시 어느 곳에 살아도 자전거로 15분이면 도달할 거리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15분 도시’ 구축 계획을 2020년 발표한 파리가 대표적이다.
15분 도시는 도보 클러스터 안에 주거·상업·여가 시설을 몰아넣는 도시계획 방법이다.
파리는 이 개념을 미니메스지구에 적용했는데, 기존 건물을 공영주택 단지와 사무실 같은 복합용도로 재건축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을 배치했다.
5분 거리인 바스티유 광장과 레퓌블리크 광장을 보행 동선으로 연결해 상업시설 확장성도 노렸다.
미국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도시로 알려진 포틀랜드도 도시를 95개 생활권으로 나눠 동네 단위의 경제·여가 활성화 계획을 수립한다.
영국 런던도 킹스크로스역을 중심으로 근처 공원과 업무시설, 복합 주거 용도를 한데 묶는 ‘직주락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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