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MRO 뚫어낸 정비 노하우
설계·건조 능력도 인정받아
자체 조선업 역량 무너진 美
中에 전함 수 밀리며 위기감
동맹국 한국에 잇단 러브콜
MRO 사업서 경쟁력 보일땐
비전투함 신규건조 노려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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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정비를 위해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한 미 군수지원함 ‘윌리 시라호’가 특수선사 업부 구역의 S-3 안벽 앞에 정박해 있다. [사진 = 한화오션] |
‘K방산’ 질주의 시발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질식한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군비 증강에 나서면서 국내 방산업계는 새 전기를 맞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인 프랑스·영국·독일 등 방산 강국들이 제조 역량의 한계로 유럽의 안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기회가 왔다.
2022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한국 방산기업들은 폴란드와 124억달러(약 16조8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무기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같은해 한국의 방산수출액은 173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미·중 경쟁’은 K방산의 또 다른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월
한화오션에 자국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호의 유지·보수·정비(MRO)를 맡겼다.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연간 20조원 시장의 미 MRO사업을 발판 삼아 글로벌 함정 시장에서 K방산의 영토를 넓힐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장
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MRO시장에 진출하면서 수주 실적과 신뢰도를 쌓으면 미 함정 신조 수주도 충분히 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거제사업장에서 만난
한화오션의 특수선MRO사업TFT 관계자들은 미 해군 함정 MRO 수주를 ‘함정 수출 도약의 전기’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존 함정에 대한 창정비의 경우 설계와 건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행하기 매우 어려운 작업이어서다.
현장 작업자들은 약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45척에 달하는 함정 정비 실적을 강조했다.
이중 35척(77%)이 잠수함이다.
잠수함은 좁은 선내에 소나(음파탐지기), 연료·부력 탱크, 어뢰 저장·발사관 등 무기체계와 기자재가 밀집해 수상함보다 정비가 까다로운 함정으로 꼽힌다.
자체적으로 수상함에 대한 창정비를 수행하는 한국 해군도 잠수함 정비만큼은 조선업체에 맡기는 이유다.
한 잠수함의 창정비가 진행중인 특수선2공장에서 만난 강정훈 특수선MRO사업팀 책임은 “잠수함은 장비가 밀집해 있는데다 바다 아래서 운용되는 만큼 침수될 가능성도 있어 수상함보다 정비 난이도가 몇 배는 어렵다”며 “30여 년간 쌓인 노하우가 미국의 인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조선업계가 미국 특수선 시장 공략의 호기를 맞이한 이유는 미국과 중국의 조선업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서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조선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대거 건조하며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군함에서 고도화시킨 조선업 역량이 상선 건조에도 한껏 발휘되며 전성기를 맞았다.
1920년 미국 내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존스법’도 든든한 뒷배가 됐다.
자국 내 독점시장의 잇점을 톡톡히 보면서 설비 투자와 생산 능력 확대에 나서지 않고도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중국·한국이 납기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조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산업은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자유경쟁을 내세운 로날드 레이건 정부가 조선업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면서 추락은 가속화됐다.
당시 계속된 경제 호황으로 임금이 빠르게 상승해 건조 비용이 치솟게 된데다 존스법으로 인해 건조 설비 투자도 소홀했던 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납기 지연 문제도 심각해진 것이다.
이후 사실상 빈사 상태에 빠진 미국 조선업계는 현재 연간 10여 대의 상선을 겨우 건조할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수선의 경우 신규 함정 건조가 지연되고 있으며, 기존 함정에 대한 MRO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밀려있는 MRO 물량으로 현재 미 해군의 공격 잠수함 가운데 즉시 가동 가능한 함정은 6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중국은 2000년대부터 조선업을 집중 육성하며 현재 수주잔량 기준 세계 최고의 국가로 올라섰다.
이는 특수선 분야 경쟁력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군수지원함을 제외한 중국의 총 운영 전함은 234척에 달해 미국(219척)을 추월한 상태다.
최신 함정 비중도 전체 전함의 70%로 미국(25%)에 크게 앞서 있다.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분야에서 여전히 중국을 압도하지만, 현 상황대로라면 향후 중국에 글로벌 제해권을 위협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미군에 팽배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세계 5위 해군력 보유를 뒷받침한 국내 조선업계의 함정 건조·정비 역량을 주목해서다.
지난 2월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성 장관은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K조선의 함정 건조 역량을 호평하며 MRO 등 분야에서 협력 의사를 타진했다.
이어 양사는 미 해군 MRO 시장에 진출하는 ‘입장권’에 해당하는 MSRA 자격도 나란히 취득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화오션은 아예 미국 본토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 함정 건조 시장까지 노릴 태세다.
한화오션이 이번에 수주한 MRO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실히 보여준다면 마냥 꿈만은 아니라는 게 방산업계의 전망이다.
건조 기술자체가 국가 기밀인 항공모함, 핵잠수함을 비롯해 구축함 등 전투함 수주는 당분간 어려워도 수송함,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 건조 시장은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 함정 MRO 수행이 향후 대규모 발주가 예고돼 있는 각국 해군의 함정 사업 수주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약 60조 원에 달하는 캐나다의 12척 잠수함 도입 사업, 3조원 가량의 폴란드 차기 잠수함 사업 ‘오르카 프로젝트’, 9조원 대의 호주 호위함 도입 사업 등 지구촌 곳곳에서 대형 프로젝트 발주가 예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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