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2층집인데 엘베 있다고 수억 세금”...50년 묵은 규제에 분통 터져

“경기도 외곽에 있는 2층짜리 대형주택은 사치성 재산이라 세금을 3배 맞고, 시가 100억짜리 서울 초고가 아파트는 일반주택으로 분류돼 세금을 덜 내는 게 공평한가요?”
유찬영 세무사는 “주거에 대한 기준은 올라갔는데 세금기준은 50년 전이다 보니 형평성에 안 맞는 일이 자꾸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고급주택을 면적이나 엘리베이터, 수영장 설치 유무로 적용하니 이 기준을 피하면 세금을 덜 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초호화 아파트가 규제를 피해 ‘일반주택’이 되고, 지방 단독주택은 ‘고급주택’으로 세금이 중과되는 일이 벌어진다.


지방세법이 정하는 ‘고급주택’은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이 시가표준액 9억원을 초과하면서 일정 면적을 넘는 경우다.

단독주택인 경우 연면적 331㎡, 대지면적 662㎡를 초과하거나, 엘리베이터(200㎏ 초과, 3인용 이하 제외)가 설치된 경우, 공동주택은 전용 245㎡(복층 274㎡)를 초과하는 경우다.

시가표준액이나 면적과 상관없이 에스컬레이터 또는 67㎡ 이상 수영장이 있는 주택도 ‘고급주택’이다.


고급주택이 되면 취득세 8%가 가산된다.

현재는 일반주택에 대한 취득세 중과제도가 유지되는 상황이어서, 1~2주택자가 고급주택을 한 채 더 사게 되면 취득세를 최대 20% 더 내게 된다.


시세 90억원 한남더힐(전용 243㎡)은 일반주택으로 분류돼 취득세 세율 3%가 적용돼 2억7000만원을 내면 되지만, 서울 근교 시세 30억원에 연면적 100평(331㎡ 초과) 2층짜리 주택은 고급주택으로 분류돼 취득세 3억3000만원(11%)을 내야 한다.

더 비싼 집이 세금은 덜 낸다.


가격이 높아도 면적기준을 피하면 세금을 덜 내다보니 ‘조세 불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조세연구원 연구결과, 고급주택을 피한 일반주택과 고급주택간 세액 차이는 크게(325.9%) 벌어졌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고급주택이 ‘고급주택’ 규정을 피한 일반주택(240~245㎡)보다 가격은 더 낮았는데도 세금은 65%나 높았다.

징벌적 과세대상이 되는 고급주택은 수요가 없어 시세는 더욱 떨어지는데 세금은 더 내는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공시가격이 가장 비싼 공동주택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PH129 전경. 이 아파트 전용면적 273.96㎡는 2022년 145억원에 거래됐지만, 고급주택 면적(복층) 기준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었다.

PH129

상위 1%를 위한 초고가 주택인데 1평이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일반주택이 된다.

최근 1년간 실거래된 100억원 이상 아파트 14건 중 10건이 전용 245㎡ 면적 이하로 ‘고급주택’으로 중과세를 피해 일반주택으로 일반세율이 적용됐다.


30년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경기도 용인에 단독주택을 지으려던 김 모 씨는 최근 건축설계사로부터 ‘세금이 4배 더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은퇴 후 로망’을 포기했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함께 서울 근교에 2층짜리 단독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게 꿈이었던 김 씨는 아내가 휠체어를 이용하기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 했다.

그런데 건축설계사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고급주택’으로 취득세 중과가 되기 때문에 2억원가량 더 들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100억짜리 아파트도 아니고, 교외 단독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아쉬워 했다.


고급주택 중과세 제도는 1975년 1월 도입됐다.

사회적으로 사치풍조를 억제하고, 한정된 자원을 좀 더 생산적인 부분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고급주택을 규정하는 여러 조건 중 도입 당시와 비교해 취득가액 기준 외에는 ‘면적’과 ‘시설’ 조건은 50년 전 그대로다.

취득가액 기준도 지난 2021년 시가표준액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된 게 유일한 변화다.


고급주택보다 앞서 1973년 사치성 재산으로 징벌적 과세가 적용된 별장세는 지난해 폐지됐다.

농어촌지역에 소재한 별장을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이 소유하는 사치성 재산으로 인식하지도 않는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 도입된 고급주택도 전면 재개정이 힘을 얻는 이유다.


1인당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법이 제정된 1975년 345만원에서 지난해 3703만원으로 10배로 팽창하는 동안 고급 주거인 ‘하이엔드(최고급) 주택’ 시장은 규제에 묶여 창의적이고 다양한 주택 건설을 억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년 차 단독주택 시공 전문업체 대표 이 모 씨는 “우리나라는 세계 12위 선진국이다.

중산층이나 자산가들의 주거 눈높이는 이미 미국 LA 고급주택 수준으로 올라왔다”며 “하이엔드 주택에 대한 수요가 큰데도 규제 때문에 시장이 크질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발전 수준에 발맞춰 고급주택에 대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고급주택이라고 별도로 과세하는 국가가 없다.

지역에 따라 고급주택을 차별화하는 방안, 면적·시설 기준 조정, 초과누진세율로의 전환 등 세제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임상빈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원은 “고급주택이 도입될 1970년대와 지금의 주택 시장은 전혀 다르다.

이러한 시대 변화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서울은 가격 기준으로 고급주택을 규제하고, 지방은 면적과 가격을 두루 고려하는 식으로 지역별 특성, 주택별 특성에 따라 사치성 재산으로서 고급주택을 재정의하고 과세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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