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태생 텔레그램 CEO 체포 두고
러 정부·의회 반발 “표현의 자유 침해”
마크롱 “법 안에서만 자유 행사 가능”
국내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음란물’ 기승
텔레그램, 수사 협조 등에 나설지 주목

텔레그램 로고. [사진=로이터연합]
온라인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 기반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 사건이 국내에서 거대한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러시아 출신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39)를 프랑스가 체포한 데 대해 러시아가 반발하면서 갈등이 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프랑스가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두로프에 대한 체포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반박에 나섰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날 본인의 엑스(X)에 “두로프 체포 이후 프랑스와 관련한 허위 정보를 접했다”며 “두로프 체포는 수사의 일환일 뿐 결코 정치적인 결정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경찰의 두로프 체포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에 대해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실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셜 네트워크 세계에서도 시민을 보호하고 기본권을 존중하기 위해 법이 정한 틀 내에서만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 표현과 소통의 자유,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충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적었다.


두로프 체포가 프랑스 정부의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법 집행은 완전한 독립성을 가진 사법 체계에 달려 있다”며 “체포는 (행정부가 아니라) 판사의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두로프는 지난 24일 자신의 전용기로 아제르바이잔에서 프랑스로 들어 왔고, 프랑스 파리 외곽의 공항에서 현장 체포됐다.


그는 아동 포르노, 사기, 사이버 폭력, 마약 밀매, 조직 범죄, 테러 옹호 등 각종 불법 콘텐츠가 텔레그램 내에서 무분별하게 유포·확산하는데도 방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두로프 체포 소식에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5일 러시아 매체 RT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의 비정부기구(NGO)들이 드로프의 체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과거 러시아 정부와 두로프가 갈등했던 때를 거론하며 “당시 NGO들은 러시아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언론·표현·사생활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익명으로 온라인에 정보를 게시하고 또 정보를 소비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프랑스는 두로프의 인신을 구속해 과도하게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 출시 전에 프콘탁테(VK)라는 소셜 미디어를 운영했었는데, 러시아 정부가 “반(反)정부 시위에 참가한 VK 사용자 정보를 제공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2014년 독일로 이주했다.


이후 두로프는 아랍에미리트(UAE), 프랑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현재 텔레그램 본사는 UAE 두바이에 있다.


타티아나 모스칼코바 러시아 인권위원장은 “두로프의 체포는 언론 자유에 대한 또 다른 중대한 침해”라며 “두로프에 대한 박해는 언론 자유와 다극 세계 창설을 지지하는 모든 이를 분노하게 한다”고 밝혔다.

‘다극 체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 중심의 양극 체제를 탈피하기 위해 주창한 개념이다.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 국가두마(러시아 하원) 부의장은 “두로프의 체포는 정치적 동기에 의한 조치일 수 있다”며 “텔레그램 이용자의 개인정보 접근권 확보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FT는 “두로프에 대한 체포는 지금까지 소셜 미디어 책임자에 대한 가장 과감한 국가적 차원의 조치”라며 “온라인 안전·언론 자유 옹호론자들과 정부 규제당국 사이의 최신의 다툼”이라고 평가했다.


온라인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39). [사진=로이터연합]
텔레그램은 지금까지 각국에서 ‘보안 정책’ 때문에 논란을 빚어 왔다.

강력한 보안으로 인한 순기능도 분명 있었지만,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럼에도 텔레그램은 수사당국들에 이용자의 개인정보 등을 일절 제공하지 않아 왔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 등이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텔레그램의 협조가 없어 수사당국이 가해자들의 신원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텔레그램의 ‘비협조’를 두고 논의가 촉발될 전망이다.

최근 서울대에서 여학우들의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한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된 데 이어 26일 유사한 종류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다수 발견됐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들이 중고생 등 10대 미성년자가 대부분이고, 음란물 제작자 중에 10대도 다수라는 점 때문에 충격이 크다.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 중에는 교사들도 있다.

‘피해 학교 명단’으로 떠도는 데만 전국의 100군데가 넘는다.

피해 학교가 500군데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룰 주재하며 “최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영상물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유포되고 있다”며 “단순한 장난이라고 둘러대기도 하지만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런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관리·감독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같은 날 실·국장 회의를 열었다.

오는 28일에는 전체 회의를 열어 텔레그램 딥페이크 음란물 확산 사태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한다.


방심위는 피해 신고 접수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텔레그램에 영상 삭제 등 강력한 대책도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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