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학교 고시엔 우승, 일본인들 일제히 박수쳤다”…한국서 日학교 우승해도 축하할 수 있어야 [World & Now]

한국계 교토국제고 첫 우승
日현지서 축하·응원 쏟아져
스포츠 정신은 국경도 초월

“이렇게 기쁠 수가”…고시엔 첫 우승 순간의 교토국제고 선수들 (니시노미야[일본] 교도=연합뉴스)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2-1 승리를 거둔 뒤 한국계 국제학교인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마운드로 몰려나와 환호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 금요일 여름 고시엔 취재를 위해 효고현의 한신고시엔구장을 찾았다.

올해로 106회를 맞는 경기인데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결승전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33도를 웃도는 기온에 태양이 정면으로 내리쬐는 3루 측 응원석에서 취재를 했지만 경기 내내 잔잔한 감동으로 힘든 줄도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목이 쉬는 줄도 모르고 소리 높여 응원하는 학생들, 자신의 몸보다 큰 북과 보기만 해도 무거운 금관악기를 들고 2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응원곡을 연주하는 학생들, 경기가 끝난 뒤 승자의 교가가 나올 때 박수로 장단을 맞춰주는 상대편 학교 응원단, 이들에게 각별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선수들. 하나하나가 여기서밖에 느끼지 못할 감동이었다.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학생들이 23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물리친 뒤 우승기와 상패를 들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이날 교토국제고는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2대1로 승리했다.

[사진 = 뉴스1]

경기 결과는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교토국제고의 창단 이래 첫 우승으로 끝났다.

한국계 학교의 우승이 처음이어서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됐다.

일부에서는 선수 대부분이 일본인이라는 점을 꼬집기도 하지만, 이들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로 된 교가를 부를 줄 아는 한국계 민족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교가를 부르는 모습 [방송 캡쳐]
교토국제고의 교가는 한국어 ‘동해 바다~’로 시작한다.

이 때문에 혐한주의자들은 이를 문제 삼기도 한다.

실제로 2021년에 교토국제고가 처음 고시엔에 진출한 뒤 생방송을 통해 한국어 교가를 들은 혐한주의자들이 학교에 전화해 ‘학교를 폭파하겠다’ ‘당장 한국어 교가를 때려치워라’ 등 많은 협박을 했다고 한다.

특히나 당시는 한일 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던 때다.


이 때문인지 올해 대회에서 학교 관계자들은 ‘동해 바다’를 부각하는 한국 언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우승 뒤 SNS와 댓글 등에서 교토국제고를 비난하는 일부 혐한주의자들의 글은 학생들을 응원하는 글에 묻혀버렸다.

일본인들에게 고시엔은 특별한 의미다.

4000여 개에 달하는 학교가 공정한 선발 과정을 거치고, 극히 일부만 진출할 수 있는 무대다.

웬만한 땀과 열정 없이는 우승은커녕 그 무대에 서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승 확정 뒤 응원도구를 흔들며 기뻐하는 교토국제고 학생들 [니시노미야(효고현) 이승훈 특파원]
일본 중장년층에게 고시엔은 향수이고, 청년들에게는 내가 막 경험했던 열정이다.

이 때문인지 교토국제고와 준우승을 한 간토다이이치고 모두를 응원하는 글들이 더 많았다.

스포츠에 정치를 끌어들여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땀과 열정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상식 밖의 일인 것이다.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한국에 있는 일본 학교가 청룡기나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면. 그래서 우승 뒤에 일본어로 된 교가가 나왔다면. 우리도 이들의 땀과 열정에 대해 진심으로 박수를 쳐줄 준비가 돼 있을까. 당장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만 나오지 않아도 성공일 것 같다.


이승훈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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