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시 피할 수 없는 무역전쟁에 대비해 '당근과 채찍' 2단계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최소 1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공약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전했다.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취임식 전에 미리 트럼프 측에 접근해 어떤 미국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할 수 있는지 자발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만약 협상에 실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높은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면 EU도 50% 이상의 보복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미 관세를 부과할 수입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EU의 한 고위 당국자는 "우리는 미국의 파트너이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도 "협상을 모색하겠지만, 보편적 관세 부과 상황이 되면 스스로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EU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에 미국과 '대서양 무역전쟁'을 치른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3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수입산 철강에 대해 25%, 알루미늄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EU는 28억유로 상당의 보복 관세로 맞대응했다.

대서양 무역전쟁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인 2021년 서로 관세 부과를 일시 유예하는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미국과 EU 간 무역에서 미국의 무역 적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트럼프 재집권 시 무역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U는 쇠고기와 대두 등에 대한 관세를 내렸지만, 연간 미국 무역 적자는 트럼프 당선 시점인 2016년 1140억유로(약 171조원)에서 2020년 1520억유로(약 228조원)로 늘어났다.


EU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액화천연가스(LNG)를 러시아 대신 미국에서 대량 수입하면서 무역 적자 규모가 감소했지만, 2023년에는 다시 반등해 1560억유로(약 234조원)를 기록했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미국의 수출품이 값싼 농축산품인 반면, EU의 주요 수출품은 상대적으로 비싼 의약품, 자동차 등이기 때문이라고 EU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EU의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절반 이하 수준에 불과해 내수가 위축된 것도 미국의 무역 적자 확대에 영향을 끼쳤다.


양국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 EU가 미국보다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전쟁 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0.5%가 타격을 입는 반면, EU는 GDP의 1%에 해당하는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역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1% 증가하는 반면 EU의 인플레이션은 0.1%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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