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광기 가득 美정치”···미드 ‘부통령’ 감독의 탄식

이아누치 감독 NYT 칼럼
“정치, 현실보다 더 예능화”
“선거, 허구와 거짓 아닌
삶에 영향 끼치는 선택”

인기 미드 ‘부통령이 필요해’의 극중 셀리나 메이어 부통령과 현실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를 합성한 뉴욕타임스 이미지. <NYT 화면 캡처>
“내가 걱정하는 건 정치가 너무 예능화하는 것이고,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시트콤과 맞춰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2012~2019년 방영된 미국이 유명 정치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VEEP)’을 감독한 아르만두 이아누치가 작금의 현실 정치 상황을 이 같이 비판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가 만든 ‘부통령이 필요해’는 한 여성 상원의원이 부통령에 오른 데 이어 갑작스럽게 연임을 포기한 대통령 자리를 승계받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후보 중도 포기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바통을 이어받는 현 정치 상황과 닮아 있어 최근 다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아누치 감독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내가 VEEP을 창조했지. 하지만 현실 버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 및 해리스 부통령 지지선언 이후 자신에게 무수한 언론 전화가 쏟아졌다고 공개했다.


과거 제작했던 드라마가 현실 정치에서 똑같이 실현된 것이 기쁘지 않느냐며 소회를 묻는 질문이었다는 것.
이에 대해 아이누치 감독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내 대답은 ‘아니올시다’”라며 드라마 스토리가 현실이 된 상황이 전혀 기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해리스 부통령도 아니고, 정치가 너무 예능화해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트콤과 맞춰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라고 현실 정치의 모습을 꼬집었다.


HBO가 제작한 인기 정치 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VEEP)’
그는 드라마 속 기획된 안무와 이야기 서사가 그 한계를 넘어 현실이 되고 있는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총기 피습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불과 2주 전에 일어난 사건이 어떻게 실시간 비극에서 상징(iconography)이 됐는지 보라”며 당시 경호원들에게 둘러쌓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발을 달라고 요청한 뒤 몸을 세우고 하늘을 향해 손을 치켜세운 뒤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를 외친 장면을 언급했다.


이아누치 감독은 그러면서 “트럼프는 생사의 순간을 일련의 살아있는 밈으로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을 예리하게 계산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많은 이들이 귀에 하얀 밴드를 붙이고 트럼프를 찬미하며 트럼프 2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믿게 하는 이벤트가 됐다고 묘사했다.


지난 공화당 전당대회 당시 지지자들이 유행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 귀에 붙였던 밴드.
이아누치 감독은 반대로 불출마를 결정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트럼프의 인위적인 비현실에 맞서 그는 현실을 직시하는 결정을 내렸고, 그것은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고 평가했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슈퍼 조’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거울에서 사실을 직시하며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는 총기 피습 사건 이후 트럼프가 만든 이 서사 구조에 동조하는 이른바 일론 머스크들(Elon Musks of this world)이 있고, 앞으로 남은 대선 기간 동안 현실 정치판에 더 많은 극적인 리얼리티가 동원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이번 선거가 현실에 실제 결과를 가져올 것임에도 소셜플랫폼에서 편집되고 음모론에 휘말리며 조작된 영상 등 멀티미디어 이벤트에 밀려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내가 만든 ‘VEEP’보다 더 광기어리고 치명적”이라며 “이는 드라마틱한 허구가 아닌 실제 사건이자 우리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지속 혹은 좌초될 수 있고, 여성들이 내 몸에 대한 자율권을 갖거나 혹은 법원의 변덕에 뒤바뀌는 혼란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아누치 감독은 이번 미국 대선이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현실’이 될지, 아니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하게 가능하다고 말해지는 현실’이 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선거라며 민주당과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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