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TV Who is] 올림픽 영웅 '후' - 체육행정가로 변신한 '왕발' 하형주

▲Who Is 오늘

하형주 선수는 1984년 LA올림픽 유도 부문 하프 헤비급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금메달리스트입니다.

하형주 선수는 현역 은퇴 후 38년간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에 상임감사로 부임해 체육 행정가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체육진흥공단은 지난 6월 올해 처음 감사실 주관으로 내부 업무추진 내용을 검토해 국민 편익 제고와 행정능률 향상 등 2개 부문에서 20개의 우수사례 후보를 발굴했습니다.

임직원의 능동적 업무추진 격려와 적극행정 문화 확산을 위함입니다.

이후 적극행정혁신위원회에서 필요성, 혁신성 및 효과성 등에 대한 심사를 진행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사업 도입','경륜 선수 부상 방지를 위한 안전복 개발' 등 최종 9개의 우수사례를 선정하고 표창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하형주 상임감사는 "능동적 업무를 칭찬하며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 감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적발 위주의 감사에서 벗어나 우수사례 발굴에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활동의 평가

하형주 감사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초반부터 기대를 모으며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로 활동했습니다.

하형주 감사는 올림픽 출전을 위한 연습 도중 허리 부상을 당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8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하라와 경기를 가졌습니다.

한판을 줘도 무방했으나 절반을 두 차례 얻어내며 4강에 진출하였습니다.

4강전에서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권터 노이로이터를 상대로 초반에 효과를 내주며 힘겨운 경기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종료 38초를 남기고뒤축걸리기를 성공하며 결승에 진출하였고 결국 우승했습니다.

이 과정을 마음 졸이며 TV를 보던 국민들은 열광했으며, 당시 경기를 시청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이 3명이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하형주 감사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일본의 숙적 스가이 히토시와 만나 모두걸기 절반을 따내면서 우승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김재엽, 안병근과 함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1회전에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벨기에의 로베르트 판 데 발레에게 가로누르기 한판 패하여 초반 탈락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모교인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 유도 선수 계순희와 함께 성화 공동 점화자로 선정되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강광배, 박세리, 서향순, 임오경, 이승엽, 진선유, 황영조와 함께 대한민국 동·하계 스포츠 레전드로 선정되어 태극기를 운반했습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하기도 했습니다.


▲출생/학력/경력

출생 : 1962년 경상남도 진주

학력 : 부산체육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체육학 학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심리학 박사

경력 : 1984년 LA 올림픽 유도 금메달
200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교환교수
2010년 동아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교수
한국청소년스포츠문화원 이사장
2023년 8월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어록

"나는 가톨릭 신자지만 유도는 나를 컨트롤하고 내 삶의 방식을 만들어 준 실질적인 종교다. 나를 지금의 이 자리에 서게 만들어준 것도 유도였고 젊은 시절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형성해 준 것도 유도였다."


[ 황주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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