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을 버틴 교토 건축 정수를 담았다”…오사카 엑스포 그랜드 링 가보니

교토 기요미즈데라의 건축기법
지름 2km의 그랜드 링에 적용
못 없이 목재에 구멍 뚫어 연결

개막까지 300일도 안 남았는데
비싸진 공사비에 무른 지반으로
국가관 51개 중 11개는 착공 전

일본 아닌 오사카만의 행사 우려

엑스포 원스톱숍에 전시된 마스코트 먀쿠먀쿠 인형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18개의 대형 기둥이 중심이 되어 부타이(무대)를 튼튼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못 하나 없이 목재를 연결하는 공법으로 1633년에 지어졌는데 400여년 동안 크고 작은 지진에도 끄떡없었어요.”
내년 4월 개막하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2025’ 취재는 지난달 27일 교토의 인기 명소로 꼽히는 기요미즈데라(靑水寺)를 방문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관공법(貫工法)’으로 불리는 건축 기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는 엑스포의 메인 상징인 ‘그랜드 링’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교토 기요미즈데라 무대의 모습. 절벽 밖으로 돌출된 무대를 지탱하는 것이 사진 아랫부분에 살짝 보이는 139개의 기둥이다.

[교토 이승훈 특파원]

400년 전 기술을 현대로 가져오다
산 중턱의 절벽 위에 서 있는 이 절은 본당 앞의 무대로 불리는 190㎡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으로 유명하다.

절벽에서 튀어나온 무대는 지상에서 13m 높이에 있는데, 이를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것이 격자 모양으로 촘촘히 짜여진 139개의 기둥이다.


안내를 맡은 미야사토 씨는 “기둥이 되는 나무에 구멍을 뚫은 뒤 가로·세로로 나무를 교차시켜 지지대를 만들었다”며 “약간의 틈새는 쐐기를 박아 고정했고 못이나 인위적인 고정장치는 일절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어진 뒤 오랜 세월을 버틴 기둥은 지난 2017년~2020년 전면 보수 공사를 거쳤다.

미야사토 씨는 “나무 수명이 400년가량 되기 때문에 오래된 나무를 자르고 새 나무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했다”며 “앞으로 400년간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요미즈데라의 무대를 받치고 있는 구조물. [교토 이승훈 특파원]
일본 전통 사찰의 기술력에 감탄하며 교토를 떠나 버스로 약 1시간 정도 달리자 엑스포가 열리는 장소인 인공섬 ‘유메시마(夢洲, 꿈의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사카만에 있는 유메시마는 같은 인공섬인 마이시마와는 다리로, 사카시마와는 해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애초 2008년 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조성됐지만 유치에 실패한 뒤 이번에 엑스포를 통해 빛을 보게 됐다.


개막까지 280여일이 남은 엑스포 현장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유메시마에 진입하자 멀리 한눈에 들어온 것이 ‘그랜드 링’이었다.

엑스포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둘레가 2km, 지름 615m, 높이 12m로 완공되면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이 된다.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공사 현장, 멀리 보이는 원형의 목조 건물이 그랜드 링이다.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엑스포 전시장 한 가운데 위치해 ‘다양성의 통합’을 상징하는 그랜드 링의 폭은 30m에 달한다.

이 위를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것도 가능하고 밑의 그늘에서 여름의 더위를 식힐 수도 있다.


외신기자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그랜드 링의 내부에 들어서자 기요미즈데라의 무대를 지지하던 목조건축 기법을 볼 수 있었다.

42cm 폭의 기둥에 21cm 크기의 사각형 구멍을 뚫은 뒤, 여기에 가로로 보를 접합하는 형태였다.

한 가지 차이점은 못을 하나도 쓰지 않은 기요미즈데라와 달리 여기는 기둥 접합부에 철제 조인트를 넣어 안전 보강을 했다는 점이다.


공사가 90%가량 진행된 그랜드 링 외부 모습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기둥에는 시코쿠 산 삼나무가, 보는 후쿠시마 산 편백이 사용됐다.

둘 다 일본 내에서 최고의 건축재료로 꼽히는 것들이다.

현재 90% 공정을 보이는 그랜드 링은 오는 10월 완공 예정이다.


오사카엑스포를 주관하는 일본국제박람회협회의 타카시나 준 부사무총장은 “지름은 도쿄스카이트리(높이 634m)가 안에 들어가는 정도”라며 “그랜드 링 내에는 국가관이, 바깥쪽에는 13개의 민간기업 전시관이 들어서게 된다”고 말했다.


기요미즈데라의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그랜드 링 하부 구조 모습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늦어지는 엑스포 파빌리온 공사
12m 높이의 그랜드 링 지붕에 올라서자 엑스포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공섬인 유메시마의 지반이 단단하지 못해 이곳에 지어지는 모든 건축물의 높이 한계는 12m다.


링 안쪽에는 국가관과 주요 엑스포관, 각종 공연무대 등의 공사가 한창이었다.

엑스포에는 161개 국가·지역과 9개의 국제기관이 참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가관이 지어져야 할 곳의 상당수가 아직도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최근 급격히 오른 공사비 때문에 아직 건설업체를 선정하지 못한 곳과 자국 내의 사정 등으로 독자 국가관 건설을 포기한 곳 등이 반납한 자리다.


일부가 아직도 공터로 비어 있는 그랜드 링 내부 공간.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실제로 급격히 오른 인건비와 자잿값 등으로 오사카 엑스포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20년만 해도 엑스포 전체 공사비를 1850억엔(약 1조6000억원)으로 예상했지만 최근에는 이를 2350억엔(약 2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국가관 건설을 계획했던 61개 국가 가운데 10곳이 이를 포기했다.

문제는 51개 국가 중에서도 아직 11곳이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엑스포 국가관으로 불리는 파빌리온은 총 4가지 타입으로 지어진다.

국가가 직접 지어 자기 전시물을 선보이는 타입A, 협회에서 지은 뒤 이를 빌려주는 형태인 타입 B·C, 그리고 간이형 파빌리온 불리는 타입X가 있다.


그랜드 링의 지붕 모습. 여기에 2km를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노을 감상 장소가 설치된다.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지난 2월 말에 착공식을 가진 한국관의 경우 타입A에 해당한다.

볼거리가 많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엑스포의 꽃으로 불리는 것이 이들 타입A에 해당하는 국가관이다.


엑스포 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는 지난 4월 “타입 A가 애초 예상보다 20% 정도 줄어들어 40개 전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포 협회 측에서는 2021년 열렸던 두바이 엑스포는 65개국, 2015년의 밀라노 엑스포는 39개국이 타입A였다는 점을 들며 40여개의 파빌리온도 적은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볼거리가 줄면서 관람객 또한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13개 기업 전시관 중 하나인 일본 파소나그룹의 네이처버스 파빌리온.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관람권 예매는 열기 대신 냉기만
독자적인 파빌리온을 짓는다고 해도 공사 기간이 빠듯하다.

현재 파빌리온 공사는 10월 중순까지 외부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이후에는 엑스포 대회장 내부에 도로포장이 시작되기 때문에 중장비를 사용하는 기둥과 벽면 등 파빌리온 주요 구조체 공사가 어려워진다.


최근 타입A 건설을 위해 공사업체와 계약한 폴란드의 경우 애초 3층짜리 건물 디자인을 단층으로 바꿨지만 외부 공사에만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공사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메시마로 이어지는 도로는 2개뿐인데 사람이나 자재 운반에 병목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재를 기다리다가 하루 공사 일정을 허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나오고 있다.


오사카 엑스포 기녑샵에서 한 시민이 기념품을 둘러보고 있다.

[오사카 이승훈 특파원]

지난달 25~26일 오사카 인근 나라에서 열린 ‘국제참가자회의’에서도 파빌리온 공사와 이후 운영에 대한 다양한 불만이 쏟아졌다.

160여개국에서 6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회의 도중에 타입A를 계획했던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 파키스탄 3개국이 타입C로 옮겼고, 브라질은 타입X를 선택했다.


엑스포 협회 이시게 히로유키 사무총장은 “타입A를 포기해 반환받은 부지에는 관람객을 위한 휴게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편의시설을 지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엑스포를 향한 전국적인 인기도 시들하다.

오사카를 포함한 간사이 지역에서는 오사카에 대한 호응이 있지만,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방에서는 엑스포 개최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예매권 판매가 이제 20%를 갓 넘긴 상황이다.

예매권 판매 목표가 1400만장인데 7개월 동안 실적은 290만매에 그쳤다.


협회는 절반은 기업, 절반은 일반 판매를 목표로 했는데 판매분의 대부분은 기업이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협회는 인터넷으로만 판매하던 예매권을 조만간 편의점과 여행사 등에서도 판매하기로 했다.


타카시나 부사무총장은 “공사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11월에 완공되는 파빌리온이 있을 정도로 늦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엑스포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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