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으로 단교 잇따랐지만
전력부족에 시달리는 국가들에
핵발전소 공급하고 친교 맺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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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로사톰이 튀르키예에 건설 중인 원자력발전소 전경. |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전 세계적인 ‘왕따’ 국가가 된 러시아가 예상치 못한 글로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냉전 시대 이후 막강한 자원을 바탕으로 유럽과 중국 등에 가스와 석유를 공급하면서 강대국의 힘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원자력발전 역량이 러시아의 핵심 외교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내셜타임스(FT)는 ‘원자력이 러시아가 새로운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유럽 등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분야에서는 전 세계 시장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위용을 떨치고 있다.
원자력기술력이 우호 국가를 포섭하는 방편인 셈이다.
방글라데시 서부 핵발전소 시험가동 눈앞
중국, 인도 등 신규 원자로 3분의1이 러시아산
실제로 최근 러시아는 방글라데시 서부의 루푸르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시험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일대는 온통 러시아어가 즐비하고, 러시아 식당을 비롯해 시장에서는 러시아로 채소가격을 흥정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루푸르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인 로사톰이 방글라데시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지역이다.
약 120억달러의 프로젝트로 올 연말 2400MW의 전력생산이 시작될 전망이다.
방글라데시의 러시아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으로 고질적인 전력부족과 정전사태를 방지하고, 이 지역 경제 성장동력인 직물가공수출 경쟁력이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는 방글라데시에 원자력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방식과 같이 중국, 인도, 이란, 이집트 등 전력생산이 필요한 국가를 공략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전 세계 신규 원자로 프로젝트의 3분의 1에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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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루푸르 원자력발전소 |
발전소 건설 기간 10년, 수명 60년
국가관 장기 우호관계 설정 불가피
원자력발전이 국제관계에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초장기 프로젝트인 점이다.
과거 석유나 가스파이프라인보다 관여도가 높고 장기계약이 필수인 분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등 북유럽국가들은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러시아산 파이프관을 통한 가스공급계약을 끝내고 다른 공급망을 찾았지만 원자력은 그러한 변화가 어렵다.
먼저 비용도 문제지만 건설 기간이 10년이다.
시작하고 시험가동까지 10년이 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은 60년에 달한다.
한번 계약이 시작되면 장기수선관리를 러시아가 맡을 경우 최소 70년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만일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에도 위험천만한 방사성 부품을 제거하고 발전소를 안전하게 해체하는데도 10년 이상이 걸린다.
다리아 돌지코바 영국 핵정책프로그램 연구원은 “원전건설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실제 건설뿐만 아니라 생태계가 생기는 것”이라 설명했다.
“원자력발전소는 러시아 영토나 다름없어”
원자력발전소를 공급받는 국가는 러시아와 각별한 사이를 강제적으로라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원전관리 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러시아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퍼 슐레키 노르웨이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러시아 측은 발전소를 마치 로사톰의 소유인 것처럼 취급한다”며 “원자력발전소를 공급받은 국가의 유일한 역할을 원자로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FT는 이같은 측면에서 방글라데시도 수십 년 동안 루푸르 원자력발전소 프로젝트를 빌미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 전했다.
알리 리아즈 일리노이주립대 교수는 “양국은 끝없는 관계가 됐다”고 전했다.
예컨대 방글라데시 외에도 4800MW급 원자력발전소를 국가 최초로 건설하고 있는 튀르키예도 같은 경험을 반복할 전망이다.
아쿠유에 건설 중인 이 발전소를 올해 전력생산이 예상되며, 이 계약은 로사톰이 발전소 직원을 포함해 모든 것을 관할 하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핀란드의 경우 로사톰이 2023년부터 건설할 예정이었던 1200MW 원자력발전소를 취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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