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등 대형 악재가 덮친 경우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국내 수출 성적이 내년까지 고전하고 민간소비 회복세도 늦어지는 등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예측이다.

특히 고물가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저성장까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한국은행은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7%로 예상했다.

지난 8월 전망치(2.1%)보다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이다.

잠재성장률인 2%를 밑도는 수치로 실질적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다고 본 것이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3.7%에서 3.6%로 소폭 낮춰 전망했다.

물가 목표치인 2%를 웃도는 수치로 내년에도 고물가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본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1~12월 물가 상승률이 많이 떨어지더라도 해석하는 데 상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연초가 되면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1~2월에는 물가 상승률이 다시 5%대를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제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53년 통계를 집계한 이래 6번째다.



수출 부진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은은 판단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 부진과 반도체 경기 부진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수의 순성장 기여도는 올해 1.8%포인트에서 내년 1.4%포인트로 주춤한 수준이지만, 수출은 0.8%포인트에서 0.3%포인트로 절반 넘게 줄어들었다.

상품 수출 증가율은 0.7%로 올해(3.4%)보다 대폭 떨어지고 특히 상반기엔 -3.7%로 역성장이 예상된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중국과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글로벌 수입 수요가 약화되면서 수출 분야 부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내 수출 부진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날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331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6.7%(66억4000만달러) 감소했다.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5.7% 줄며 2020년 이후 22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이러다 보니 20일까지 연간 누적 무역적자는 399억6800만달러에 달한다.

역대 최대였던 1996년(206억2400만달러 적자)보다 큰 규모다.

한은은 무역적자를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폭이 지난해 883억달러에서 올해 250억달러로 크게 줄어들고, 내년에도 280억달러에 머물 것으로 봤다.


팬데믹 이후 성장을 이끌었던 민간소비도 둔해진다.

'펜트업 효과(보복 소비)'는 내년까지 이어지지만 속도는 느려질 것이란 예측이다.

한은은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이 2.7%로 올해(4.7%)보다 2%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봤다.

설비투자(-3.1%)와 건설투자(-0.2%)도 역성장할 것으로 한은은 전망하고 있다.


대외 상황도 녹록지 않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경제 구조상 전 세계 경기 침체가 국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한은은 미국의 내년 성장률을 0.3%로 예상했다.

유로존은 -0.2%로 역성장하고 중국과 일본도 각각 4.5%, 1.3%로 저조하다고 전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 경제 부진과 반도체 경기 침체에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세계 경제 여건이 한국에 매우 불리하다"고 했다.

이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성장률 하향 조정 요인 중 상당 부분을 글로벌 경기 둔화폭 확대 등 대외 요인이 차지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엔 경제 상황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봤다.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이 완화돼 경기가 살아나고 반도체 시장 상황도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 국장은 "내년 하반기 이후에는 대외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부진이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스태그플레이션이 덮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거시경제적 대응이 어렵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조사팀장은 "최근 고물가 상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간 중 상위 5~6% 안쪽인데 경제성장률이 1%대라면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기술적 정의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부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고 고물가도 여전해 '슬로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년 물가 이슈는 다소 잦아들 것"이라며 "일시적 리세션 상황에 접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이날 "내년 하반기부터는 (성장률) 반등과 동시에 물가도 낮아지므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보기에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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