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준發 신흥국 위기 ◆
영국 국채 시장 불안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덮치기 시작했다.

파운드화 급락과 영국 국채 시장 위기 여파가 미국의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시장까지 확산하고 있다.


영국 연기금과 보험사 중 상당수가 담보 가치 하락으로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해 보유 자산인 CLO를 앞다퉈 팔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복수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같은 투매로 CLO 가격이 본질 가치를 크게 밑돌 정도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투자회사 파머스퀘어캐피털매니지먼트가 운영하는 투자 등급 CLO채권지수는 지난주 88.7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달 초 대비 4% 하락한 것이다.


WSJ는 "CLO 시장 혼란은 안정적이었던 선진국의 금리가 변동되면 금융시장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CLO는 영국 연기금이 국채를 담보로 레버리지를 늘려 투자하는 부채연계투자(LDI) 전략에서 금리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보유하는 자산이다.

콘 키팅 브라이튼록그룹 리서치 책임자는 이들 연기금의 CLO 보유 비중이 전체 자산 중 최대 5%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CLO 가격이 크게 하락하자 미국 일부 투자펀드는 저가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CLO 전문 투자회사인 이글포인트크레디트매니지먼트는 지난 5일 끝난 일주일간 거래에서 8000만달러 규모의 CLO 채권을 매입했다.

이는 통상 이글포인트 7거래일 평균 매입액의 2배에 해당한다.

이글포인트의 매니징 파트너는 "우리가 봐왔던 것 가운데 사상 최대의 매도 압력이었다"고 설명했다.

CLO 가격은 한때 2020년 중반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CLO 투매세는 거래량으로도 확인됐다.

이달 7일 기준으로 지난 3주간 미국 CLO 거래량은 129억달러에 달해 2020년 4월 9일(146억6000만달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이달 첫째주 일평균 거래량도 10억달러로 지난 1년간 하루 평균 거래량의 두 배에 달했다.

영국 금융시장 위기로 위험에 노출된 자산은 CLO뿐만이 아니다.

영국 투자자들의 강한 매도세는 회사채와 주식, 자산유동화증권(ABS), 주택저당증권(MBS)에도 타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연기금 유동성 위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가 국채 매입 시한 연장이 없다고 못을 박자 금융시장은 다시 출렁였다.

이날 3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11%포인트 오른 연 4.79%를 기록했다.

7거래일 연속 오르며 지난달 27일 수준(연 4.99%)을 위협했다.


시장이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자 BOE는 14일 종료를 계획한 긴급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연장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 전했다.

한 은행원은 FT에 "BOE가 LDI 매니저들이 마진콜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예의 주시하면서, 국채 매입을 연장할지 말지는 13일 또는 14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갈지자 행보는 긴축과 완화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BOE의 딜레마를 보여준다고 WSJ는 분석했다.

시장은 BOE가 채권 매입 시한을 더 늘려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이는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이어서 가뜩이나 높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할 소지가 높다.


BOE는 10% 가까이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달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과 단기적 '양적완화'를 함께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한편 BOE는 연기금 유동성 위기를 부른 LDI에 대해 더 강화된 규정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BOE 금융정책위원회는 12일 유동성 완충장치 등 비은행 분야에 적용된 조치들이 LDI 전략에도 도입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김덕식 기자 /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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