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REPORT : 뜨거운 감자 된 1기 신도시 ◆
분당 신도시 전경.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윤석열정부가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해 재건축·리모델링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특별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투자 수요도 몰리고 있다.


1기 신도시는 거주하는 인원만 무려 30만가구라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여러 규제 완화 방안이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지고 있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매일경제가 1기 신도시의 현황과 규제 완화 방향, 존재하는 문제점 등을 정리해봤다.


◆ 10년 뒤 73%가 재건축 대상

1기 신도시는 작년 9월 분당 시범단지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재건축 연한(30년)에 도달하고 있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10년 후엔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 중 70% 이상에 재건축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교수는 1기 신도기 전체 305개 단지 중 58개 단지가 2021~2025년에 재건축 판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2026~2030년에는 223개, 2030년 이후엔 24개 단지가 해당될 것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1기 신도시 모든 아파트가 2030년 이후에는 재건축 대상이 된다.


준공 15년 후부터 조합 설립이 가능한 리모델링은 이미 전체 주택의 97.7%인 298개 단지가 가능 연한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됐다.


1기 신도시의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역시 '낡아간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과 비교해도 알 수 있다.

2026년까지 28만여 가구가 입주 30년 차를 넘기게 된다.

현재 서울 전체 노후 아파트(30만7366가구) 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적으로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건설된 신도시와 비교해볼 때 1기 신도시는 계획기법 및 조성 수준에서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기 신도시는 1990년대 중산층을 타깃으로 조성돼 지금 시대 중산층이 요구하는 도시 수준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1기 신도시 주차장 기준은 '가구당 0.6대'에 불과하다.

냉장고도 당시 유행하던 '150ℓ'에 맞게 설계돼 요즘 냉장고 표준과 격차가 크다.

1기 신도시 주민 사이에서 낡은 주거환경에 대한 불만이 많지만, 아직 체계적인 정비계획이 세워진 곳은 없다.


◆ 용적률 확대·안전진단 완화 등 기대

하지만 현행 규정상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불가능하다.

재건축은 기존보다 늘어난 주택을 일반 수요자에게 분양해 얻은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1기 신도시는 주택 수를 늘릴 만한 추가 용적률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169~226%다.

주거 지역 법정 상한선(300%)보다 낮지만, 각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기 위해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은 200% 안팎이다.

가구 수를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최근 성남시가 조사한 분당 공동주택 125개 단지의 용적률 현황에 따르면, 여분의 용적률을 활용해 재건축할 수 있는 단지는 없었다.


1기신도시특별법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발의됐다.

재건축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주거지역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보장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밖에 원활한 재건축 진행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완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광역교통대책 인센티브, 조세·감면금 부담 혜택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움직임 덕분에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 속도를 내는 단지도 부쩍 늘었다.

군포시 산본동 한라주공4단지 1차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는 최근 군포시청에 예비안전진단 신청서를 제출했다.

분당신도시 서현동 시범한양, 우성, 삼성한신, 현대 등 4개 단지도 지난해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 형평성 논란 피할 수 없을 듯

하지만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이 기대만큼 속도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아직 분분하다.

특히 분당, 일산은 재건축 사업 첫 단계인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특히 1기신도시특별법에 포함된 '용적률 최대 500%까지 상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많다.

아파트가 모여 있는 신도시에서 주거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면 '닭장 아파트'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도시 인프라스트럭처도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수 없어 교통난, 일조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높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부동산TF(전담조직)에 관여했던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일단 1기 신도시 재건축 단지는 용적률을 주거 지역 법정상한선(300%)까지 올려줄 것으로 전망된다.

역세권 중 일부 지역을 500%까지 늘려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500가구 안팎 소규모 단지가 대상일 것으로 보인다.

2000가구 이상 대형 단지는 최대 용적률을 500%까지 늘려주면 근처 인프라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비판이 많다.

그나마 투기 수요를 의식해 늘어난 가구 수의 일정 비율을 기부채납받는 조건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특정 지역을 위한 특별법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1기 신도시 외에도 정비사업이 시급한 수도권 단지가 많은데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다른 지역주민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다.

당장 서울만 해도 목동·상계동 등이 비슷한 상황인 데다 고양·용인 등 1기 신도시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다른 단지 주민들에게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규제 완화 방안이 나오자마자 1기 신도시 집값이 불안해진 만큼 새 정부가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 재건축? 리모델링? 혼란스러운 주민들
한편 1기 신도시는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아파트 구조를 유지하면서 주거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지하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넓힐 수도 있다.

준공 30년 연한을 넘어야 추진 가능한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준공 15년에 B등급 이상이면 수직증축, C등급 이상이면 수평증축이 가능하다.

평균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하다는 것이 부동산 업계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특별법 얘기가 나오기 이전까진 1기 신도시에선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대다수였다.

성남시는 최근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3, 4단지 리모델링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앞서 지난해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에 이어 분당 신도시 세 번째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이다.


고양시도 일산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2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은 250%, 3종 일반주거지역은 300% 이하로 상향됐다.

이번 조치로 강선14단지, 문촌16단지 등 리모델링 사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산본신도시에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8개 아파트 단지가 올 초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를 출범시켰다.

군포 금정동 율곡주공3단지가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려 해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리모델링 사업성을 높이는 수직증축은 정부가 2014년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허용했지만 현재까지 통과한 곳은 서울 송파구 성지아파트 1곳뿐이다.

지반 등 구조안전성을 살피는 2차 안전성 검토가 까다로워서다.

리모델링의 또 다른 요구사항이던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을 선택해야 할지, 리모델링을 선택해야 할지 하는 문제는 주민들 사이에서도 논란이다.

만일 한 방향의 사업형태를 골랐다가 중간에 선회하게 되면 매몰 비용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분담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상태대로면 신도시 재정비 사업은 더 혼란스럽게 된다"며 "정부나 정비사업 조합이나 재건축과 리모델링 중 어느 쪽이 가능성이 높은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움직임은…3기 신도시 들어서는 2027~2028년 시작 관측

1기 신도시 재건축, 그래서 언제쯤?

분당·일산 입주때 첫 시범단지
재건축도 맨 먼저 할 가능성

집값 상승·전세대란 부작용은
'차례차례 개발'로 최소화 방침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1기 신도시 정비 문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부동산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윤석열정부에서 신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 방안이 나오자마자 해당 지역 시장은 불안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대선 전인 올해 1월 1일부터 3월 9일까지 0.07% 오르는 데 그쳤다.

하지만 대선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선 후 약 2개월(3월 10일~4월 22일)간 0.26%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0.25%에서 0.08%로 낮아진 것과 대비된다.

경기 고양시 일산(0.52%), 부천시 중동(0.29%), 성남시 분당(0.26%), 군포시 산본(0.14%), 안양시 평촌(0.12%) 순으로 아파트 매매가격이 올랐다.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이 뛰는 가운데 거래도 연일 증가세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지난 4월 경기도 아파트 매매 건수는 6197건으로 1월(3449건)보다 80% 늘었다.

경기도 아파트 거래는 지난해 7월 1만5026건에서 올해 1월 3454건까지 급감했지만 2월부터 상승세로 전환했다.


특히 1기 신도시가 포함된 지역 거래 증가가 눈길을 끈다.

분당신도시가 위치한 성남시는 4월 매매 건수가 256건으로 2월(111건)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일산신도시가 위치한 고양시도 같은 기간 거래가 274건에서 554건으로 늘었고, 평촌신도시가 있는 안양시는 87건에서 155건으로 급증했다.

더욱 큰 문제는 1기 신도시에서 정비사업이 일시에 추진될 경우 부동산 시장 불안을 더 키울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30만가구에 달하는 이주 수요가 몇 년 동안 몰려서 나오면 근처 전월세 시장은 '쑥대밭'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정창무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도 "1기 신도시 정비 과제는 언젠가는 손대야 할 문제지만 적정 수준으로 정비사업 시기 및 물량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정부가 대선 당시 내놓은 정책공약집엔 "1기 신도시 순환 개발을 추진해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 및 전세난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3기 신도시와 중소규모 공공택지 개발사업지구에 이주 전용 단지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분간은 1기 신도시 정비사업과 관련한 밑그림을 그리고, 3기 신도시가 들어서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는 2027~2028년이 돼서야 1기 신도시에서 본격적인 정비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이 같은 부분을 고려하면 1기 신도시 투자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만일 그중에서도 정부가 가장 먼저 손댈 것으로 추측되는 곳은 입주가 빠르면서 대지지분이 높은 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신도시 입주 당시 '첫마을'이었던 단지가 정비사업에서도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꼽히는 '아임해피' 정지영 아이원 대표는 분당에선 삼성한신·한양·우성·현대, 일산에선 강촌 5·6·7단지 등이 사업 속도가 빠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평촌에선 은하수·관악·샛별한양 1·2·3단지, 산본에선 한라주공 4단지·가야주공 5단지, 중동에선 포도마을·사랑마을·한아름 등을 예상했다.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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