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전남소방항공대 BK-117 헬기 사고로 프로펠러 파손
사고 가능성 묵인한 채 '위험 비행'…상부 보고 절차도 미뤄
정비실장·정비담당관 각각 승진, 항공대장 정상 근무…구조대원은 징계

전남소방항공대가 운용 중인 일본 가와사키 'BK-117' 헬기 (사진=에어크래프트 커뮤니티 화면 캡쳐, 해당 사진은 사고헬기와 무관함)
[영암=매일경제TV] 전남소방본부와 전남소방항공대가 구조작업 중 발생한 헬기사고를 수개월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징계 대상인 사고 관련자들은 되레 승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일경제TV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사고는 지난 4월25일 전남소방항공대가 운용 중인 일본 가와사키사의 BK-117 헬기로 인명구조 활동을 진행하던 중 발생했습니다.

강풍이 부는 날씨에 호이스트케이블(구조용와이어)을 이용해 구조대원을 현장에 내려준 뒤 다시 감는 과정에서 헬기 하단부에 부딪힌 와이어 고리가 튕겨 올라 로터블레이드(프로펠러)에 부딪친 것입니다.

◇대형 인명사고 이어질 수 있었지만 "상황 몰랐다"며 구조활동 지속

비행 중인 헬기 프로펠러에 와이어가 감기거나 심각한 파손이 발생했다면 추락, 탑승자 사망 등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지만 사고 인지도 못했습니다. 사고 발생 직시 비상착륙 후 점검을 해야하지만 "상황을 몰랐다"는 이유를 들어 구조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특히 헬기조종사를 비롯한 탑승자들은 사고 가능성에 대해 묵인한 채 계속 비행했으며, 사고 처리에 있어서도 모호한 항공안전법을 악용해 상부 보고 절차까지 미룬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항공안전법의 기본 취지인 다른 항공기의 안전과 사고예방을 위한 사고사례 전파 등도 이뤄지지 않아 총체적 허점을 보여줬습니다.

전남소방항공대는 사고 헬기 착륙 이후 점검과정에서 로터블레이드에 약 5~6cm 파손을 발견, 이 사실을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에 바로 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상급기관인 전남소방본부는 이틀 뒤인 27일 구조팀장, 감사 담당자등 헬기 관련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해 상황을 파악한 뒤 법령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고 헬기 기장이었던 항공대장과 정비실장, 정비담당관 등 3명으로 구성된 자체 사고처리팀은 항공안전법 등 법령에 이 사고를 정확하게 명기한 법 조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 사고나 준사고가 아닌 '경미한 파손'으로 잠정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3600시간 정기점검 과정에 슬쩍 수리 내용을 포함시켜 부품 교체를 진행하려 했던 상황도 포착됐습니다.

◇제조사, 단순 수리 불가능 '중대한 파손' 통지…소방항공대, 프로펠러만 교체

결과적으로 이번 사고는 단순한 헬기부품 파손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소방항공대 측은 수리를 위해 프로펠러 제조사에 문의한 결과, 단순 수리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교체가 필요한 중대한 파손이라는 통지를 받은 뒤에야 별도 수리를 위한 입찰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비점검 사업에 입찰한 헬기 수리업체 A사는 단가 공개 문제 등을 이유로 정비를 거부했고, 프로펠러 교체작업만 별도 입찰을 거쳐 정비업체 H사를 선정한 뒤 수리를 마쳤습니다.

사고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단서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됩니다.

보통 경미한 파손 등 상황에서 헬기 정비가 필요한 경우 직접 비행해 정비업체로 이동하게 되는데, 한 제보자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직접 비행하지 않고 무진동차에 실려 수리업체로 이동하는 게 목격됐습니다. 이는 직접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된 상태였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해당 헬기는 지난 4월25일 사고 발생 이후 정비가 완료된 9월18일까지 약 5개월 동안 운행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여름 유독 수해와 재난 사고가 많아 구조업무에 헬기가 투입될 일이 많았던 사실을 감안할 때 심각한 공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남소방본부 등 해당 사고 숨겨…"보험 처리 후 서류보고하려 했다"

전남소방항공대 전경 (사진=최연훈 기자)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남소방본부와 전남소방항공대는 긴 수리 기간에도 국토교통부나 관련 기관에 해당 사고를 숨겼습니다.

전남소방항공대 측은 "사고처리를 보험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완료 후 서류상으로 보고하려고 했다"며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사고 보고가 지연되면서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시되는 사고사례 전파도 생략돼 다른 항공기의 사고 예방 기회까지 잃어버린 셈입니다.

사고 관련자들은 징계는 커녕 승진까지 했습니다.

자체 사고조사팀 구성원이었던 정비실장과 정비담당관은 각각 본부와 내부 승진했고, 정년 퇴임을 앞둔 당시 조종사였던 항공대장은 아무런 징계 없이 정상 근무하고 있습니다.

반면 당시 호이스트케이블을 잡고 있었던 하급직원인 구조대원은 징계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준사고가 아니라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면서 구조대원만 징계 조치한 점도 의문으로 남습니다.

한편 전남소방본부나 항공대장 등은 헬기와 관련된 내용은 '민감 사항'이라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부했습니다. 항공대 정비실장으로 소통 창구를 일원화해 사고 축소나 책임 회피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어 관리감독 기관의 면밀한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 최연훈·손세준 기자 / mkcyh@m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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