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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감사인사
기사입력 2020-11-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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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얼마 전에 큰 상을 하나 받았다.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누군들 애쓰고 살지 않으랴. 그러나 그렇다고 어디서 눈에 보이는 상까지 쉽게 주는가. 그 상은 공부하며 살아온 삶에 대한 것이었고, 더구나 국내에서 받은 것이라 각별했다.

짧은 감사 인사에다 마음속을 오간 많은 생각을 담았던 터라, 어느 작은 허공을 잠깐 떠돌았던 그 말들을 여기에 옮겨 적어두고 싶다.


"소개 글 어딘가에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고 써 있네요. 그때부터 아침밥 짓기까지의 시간이 긴 세월 일하며 살림하며 아이들 기르며 공부하며 살아온 제가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2시 반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 긴장은 남아 지금도 원하는 시간에 정확하게 잠이 깹니다.

좀 편히 자보겠다고 알람을 켜놓아도 소용없습니다.

늘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깨거든요. 자주 외국에 가는데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날 아침에도 현지시간으로 정확히 5분 전에 깹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부하면서도 늘 나쁜 짓 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여자가 공부하려 하는 걸, 똑똑해지려는 걸, 별로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던 시대와 환경을 저는 살았던 것이지요. 독일문학이 전공인데 독일 유학 경력도 지금껏 세 학기에 불과합니다.

언제부터인가는 가르치러도 갑니다만.
언젠가 남의 나라 독일에서 상을, 그것도 과분하게 큰 상을 받았을 때 너무도 감사해서, 그 표시를 꼭 하고 싶어 독일에다 작은 한옥 정자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내 나라에서 받는 이 상이 더욱 기쁩니다.

어디서든 제 집에서 인정받기가 제일 어렵죠. 더구나 이 상은 저의 삶에 대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큰 감사를, 주신 분들께 바로 표하기는 어렵고, 상금을 좋은 데 쓰겠습니다.

제가 지키는 여백서원 부근에 지금 괴테마을(Goethe-Dorf)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왜 난데없이 괴테냐고요?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얼마나 높이, 넓게 클 수 있는가,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가를 젊은이들에게 실물 예로 보여주고 싶어서요.) 그 작은 숲속 마을에다 별을 볼 수 있게 아주 작은 천문대와 과학실을 세울 수 있는 터를 마련할 겁니다.


수상 소식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 상은 마치 강력한 자석이었던 듯 최근 다른 놀라운 소식을 연이어 이끌어 왔습니다.

한국과 독일을 잇는 사람들, 한독 협회와 독한 협회가 '이미륵상'을 주겠다고 연락해 왔고요. (이미륵은 3·1운동 직후 고국을 떠나 독일에서 살며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써서 독일 교과서에까지 실린 분입니다.

지금은 그분이 역경의 조국을 떠난 지 100년이 막 지난 시점입니다.

) 더욱 놀라운 것은 며칠 전 욀스니츠라는 작은 독일 도시 시장에게서 온 팩스였습니다.

(욀스니츠는 우리나라 태백 같은 탄광도시인데, 그 도시 태생의 큰 시인을 기리는 상을 사회의식과 문학성이 두루 높은 세계 시인들에게 수여해 알려진 도시입니다.

우리의 통영이 윤이상을 기려 국제적 위상을 높이듯이요.) 받은 팩스에는 그 '라이너 쿤체상'을 내년에 저에게 주겠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나이 일흔인 제게 한꺼번에 주어지는 이 큰 영예들은 걸어온 길을 새삼 되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마지막 수업에서 제자들에게 그랬습니다.

"글을 배워 책을 읽었거든 바르게 살라"고요. 아무런 계산도 할 줄 모르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옳다고 생각되면 무모할 만큼 그냥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싶고요. 공언한 제 노후 직업이 '박수부대'거든요. (제가 박수 하나 잘 칩니다!) 네, 뜻을 가지고, 이해득실 따지지 않고, 행(行)하고 살면, (꼭 남들처럼 살려 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것이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상(賞)으로서 다시 한번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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