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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의 아내` 박래현…그는 위대한 화가였다
기사입력 2020-10-3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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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위대한 작가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요즘 미술계는 '화가 박래현(1920~1976)의 재발견'으로 떠들썩하다.

'바보 산수'로 유명한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의 아내로만 기억했던 사람들이 반성과 감탄을 거듭하면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 '박래현, 삼중통역자'(내년 1월 3일까지)를 감상하고 있다.

코로나19에도 하루 500~600명이 전시장을 다녀가고, 유튜브 해설 전시 투어 조회수도 4만회를 넘겼다.

1985년 호암갤러리 10주기 전시만 해도 남편 김기창 화백의 관점이 개입됐지만, 부부가 세상을 떠난 지금 제3자인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재조명한 박래현은 '시대를 앞서간 화가'였다.

1980년대에는 '민족·역사 의식, 한국적 미감이 부족한 작가'라는 혹평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통과 세계 미술을 접목했으며 현대적이고 감각적 작가'라는 호평을 받는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야 화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박래현이 저 세상에서 이 전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의 소회를 상상하면서 이번 전시작들을 풀어봤다.


생전 작업실에 있는 박래현 작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화가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엄마로 살면서도 미술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박래현입니다.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총독상)을 차지한 그림 '단장'이 이번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군요. 검은 기모노를 입은 하숙집 딸이 붉은 화장대를 보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주변 배경을 생략하면서도 두 손을 세밀하게 묘사하는데 집중했죠. 검정색과 붉은색, 살색 등 3색만으로도 대상의 질감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전람회 수상 후 훤칠한 스타 작가인 남편을 만났고, 제가 먼저 편지와 굴비 한두름을 보내고 청혼을 했답니다.

친정 어머니가 청각장애가 있는 남편을 극구 반대했지만, 화가와 결혼하면 화가로 살 것 같아서 1947년 혼례를 올렸지요. 하지만 결혼 후 집안일에 치여 붓을 들 시간이 나지 않더군요. 결국 잠을 거의 안 자거나 우는 아이를 업은 채 독하게 그림을 그렸죠.

1974~1975년작 어항
막내딸을 출산한 1956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노점'으로 결실을 이뤘고 지금 전시장에 걸려 있어요. 피카소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아 군산 시장 풍경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한 색면으로 그려봤습니다.

선은 간소화하고 색을 겹겹이 쌓아 입체적인 풍경을 만들고 싶었죠. 당시만 해도 서구적인 인체 비율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었지만 요즘 관람객들이 "대담하고 멋있다"고 평가하시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1970_1973년작 Retrospetion of Era
결혼 후 개인전은 없었고 부부전을 12회 열었는데 항상 남편이 더 조명을 받았습니다.

자식들이 청각 장애인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려면 남편이 최고의 화가가 되어야 하기에 그 뒤를 묵묵히 지켰지요. 이번 전시 제목 '삼중통역자'는 제 별명이기도 해요. 미국 여행지에서 가이드의 영어 해석을 듣고 남편에게 구화(口話)와 몸짓으로 알려주던 내 모습을 보고 수필가 모윤숙이 지어줬죠. 그런데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 삼중통역자 전 전시전경
김예진 학예사는 회화와 태피스트리(직조), 판화라는 세 가지 매체를 넘나들고 연결한 제 작업세계를 '삼중통역자'로 표현하더군요.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던 저는 한국화에만 머물지 싶지 않았어요. 물감과 아교의 번짐 효과로 부엉이 깃털을 표현한 '달밤' 등을 그리며 다양한 채색 기법과 안료들을 실험했죠. 1960년대에는 처음으로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추상화에 눈을 떴습니다.

외국 박물관에서 본 황금빛 유물과 전통 가면을 재해석해 구불거리는 황색 띠로 가득찬 한국화를 시도했죠. 1963년 한지에 물감을 흘리고 뒤섞고 흩뿌리는 기법을 시도한 '잊혀진 역사 중에서', 1966~1967년 먹의 번짐으로 고대문명의 생명력을 표현한 '영광' 등이 그 과정에 있는 작품이에요.

1970~1973년 태피스트리 작품
1967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한 후 미국에 들렀을 때 판화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남편만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47세에 뒤늦게 유학을 준비했죠. 1969년 뉴욕 프랫 그래픽아트센터에서 2년 판화를 연구한 후 밥 블랙번 판화 공방으로 옮겨 3년간 판화 작품을 제작했죠. 하회탈과 신라 금 귀걸이, 자궁, 곡식 등 역사와 생명, 대지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새기고 결합했죠. 이 시기에 손으로 뜨개질을 해서 만든 직조에 엽전과 철사, 목재 등을 연결한 태피스트리로 다양한 조형 실험도 했죠.
1974년 귀국 후 판화와 한국화를 결합하는 시도를 했지만 간암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2년 후 눈을 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제 건강과 열정을 바친 작품들(전시작 138점)의 가치를 알아주는 후대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1943년작 화장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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