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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레시피] 아홉 가지 공보다 한 가지 실수를 기억한다
기사입력 2020-10-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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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베푼 것, 나의 공, 내가 밥 사 준 것, 나의 존재만 기억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은 것, 남에게 밥 얻어 먹은 것은 이상하게도 금방 잊는다.

이로 인해 내가 세운 아홉 가지의 공은 기억하지만 나의 실수, 나의 자만, 나의 이기심으로 행해진 단 한 가지 실수는 잊는다.

그러나 남들은 당신의 오만과 실수 한 가지를 더 기억한다.

이로 인해 실패와 좌절을 맞는 것이 바로 직장 생활이다.



▶이승엽이 빈 볼을 맞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 프로 야구 선수 중에서 ‘국민 타자’ 호칭이 붙는 선수는 이승엽 선수가 거의 유일하다.

그는 1995년 삼성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다시 삼성에 복귀해 총 23년간 현역으로 뛰다가 2017년에 은퇴했다.

한국 프로 야구에서 463개, 일본 프로 야구에서 138개 등 총 626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특히 2003년에는 56개의 홈런을 기록해 일본 프로 야구의 전설 왕정치 선수의 기록을 넘어서 아시아 선수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전설 같은 선수로 기록을 남긴 것도 의미 있지만, 은퇴 시즌인 2017년에는 삼성을 비롯한 각 구단에서 은퇴 경기를 열어 주어 선수와 관중이 모두 이승엽 선수의 마지막 시리즈를 함께 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이승엽 선수의 은퇴 시리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이승엽 선수가 야구인 모두의 환송을 받았던 이유는 그의 실력이나 기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성이 한몫했다.

누구보다 겸손했던 이승엽 선수는 개인 기록도 중요했지만 팀플레이를 통해 삼성 및 일본 구단의 우승은 물론이고 한국 야구 대표팀이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의 인성이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바로 경기에서다.

이승엽 선수는 누구보다 홈런을 많이 쳤다.

하지만 그는 홈런을 치고 이른바 ‘빠던’을 행하거나 혹은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며 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거나, 과도한 몸짓으로 홈런을 자축하지 않았다.

이승엽 선수라고 결정적인 홈런을 치면서 일어나는 격한 감정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홈런의 기쁨보다 홈런을 허용한 상대 투수의 마음, 상대 선수들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 가볍게 손을 드는 세리머니만 하며 그라운드를 빠르게 돌았다.

이 점을 상대 투수들도 배려로 받아들였고, 해서 이승엽 선수는 실투가 아닌 고의로 몸을 맞히겠다고 작정하고 던지는 ‘빈 볼Bean Ball’을 맞지 않았다.


‘빠따 던지기’, 즉 빠던이라고 부르는 ‘배트 플립 Bat Flip’. 이 행위에 대해 어떤 이들은 공을 배트의 중심에 맞힌 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연결 동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타자의 의식적인 행위다.

일종의 자기 과시, 관중을 위한 세리머니인 것이다.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는 타자들의 이 ‘빠던’을 거의 금기시하고 있다.

‘홈런을 허용한 투수에 대한 조롱’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리그에 비해 메이저 리그보다는 유연한 한국, 일본, 대만, 중남미에서는 종종 이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2015년에 벌어진 WBSC프리미어12 준결승 일본전에서 오재원 선수의 빠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9회 초 2아웃 상황에서 오재원 선수는 일본 투수의 공을 치고 바로 빠던을 했다.

누가 봐도 홈런 상황이었다.

오재원 선수는 진루를 위해 뛰지 않고 공을 바라봤는데 공은 아깝게도 그라운드를 넘지 못하고 담장 앞에서 상대에게 잡혔다.

이 경기를 중계로 지켜보던 외국의 야구팬들이 ‘한국 야구의 빠던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당시 『뉴욕타임즈』는 ‘배트 플립은 한국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상대를 멸시하는 행위’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메이저 리그 개막이 연기되었을 때 미국 스포츠 채널은 한국 프로 야구를 중계했다.

이때도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한국 선수들의 빠던이었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타자가 빠던을 행하면 바로 보복이 날아온다.

설사 투수가 바뀌어도 빠던을 행한 타자에게 ‘머리나 목을 겨냥한 빈 볼’을 던지는 경우가 예사다.

해서 양 팀 선수가 일제히 몰려나와 그라운드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벤치 클리어링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만의 시작
이처럼 인생사는 물론이고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 겸손이 중요하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업무에서 아무리 탁월한 능력으로 성적을 올려도 겸손치 않거나 동료를 배려하지 않는 행위는 ‘직장 생명 단축 열쇠’가 된다.

사람은 행한 것, 베푼 것, 나의 공, 밥 사 준 것, 나의 존재만 기억한다.

도움을 받은 것, 팀이 더 중요하다는 것, 밥 얻어 먹은 것, 도움을 받았던 것은 이상하게도 금방 잊는다.

이로 인해 내가 세운 아홉 가지의 공은 기억하지만 나의 실수, 나의 자만, 나의 이기심으로 행해진 단 한 가지 실수는 잊는다.

그러나 남들은 당신의 오만과 실수 한 가지를 더 기억한다.

이로 인해 실패와 좌절을 맞는 것이 바로 직장 생활이다.


여기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선택해 보자. 슬픔을 같이할 수 있는 것,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할 수 있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 100% 후자다.

인간의 본능 중에서 가장 누르기 어려운 것이 질투와 시기다.

그것은 동료의 성공과 비례한다.

직장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은 팀워크 안에서 개인기를 발휘하는 곳이다.

팀의 승리가 고르게 팀원들에게 배분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뛰어난 개인기를 발휘하는 팀원이 있기 마련이다.

그를 바라보는 속내는 직장인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르다.


상사는 능력 있는 직원을 든든한 부하로 여기면서도 ‘이 친구가 내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자문한다.

동기는 ‘내가 저 친구 밑에서 일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고, 후배는 ‘저 선배에게 줄을 서야겠는데’라고 판단한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상사는 무심한 행동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성과 좀 냈다고 이 친구가 나를 무시하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당신을 이끌어 줄 상사가 아닌 당신의 앞길에 재를 뿌릴 질투의 화신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다.

승진시키기는 어렵지만 끌어 내리기는 쉽다는 것을. 동기도 마찬가지다.

같이 갈 수 있는 동료, 성과도 나눌 수 있는 배려 있는 동기로 인식시키는 것이 좋은 동반자 전술이다.

후배 역시 마찬가지다.

선배로서, 상사로서 공을 나누어 주는 배포를 갖추었다는 인식은 후배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들이다.

하지만 막상 일이 벌어지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정한 판단의 사고는 멈추고,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며, 충동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당신은 내부의 적과 싸우는 힘든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게 된다.


겸손이 중요하다.

축구에서도 스트라이커가 조명을 제일 많이 받지만 구단에서 평가할 때 어시스트를 한 것 역시 점수를 받는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많은 대원들이 준비한다.

하지만 산의 정상에 올라가 깃발을 꽂는 것은 한 명뿐이다.

그 한 명을 위해 팀원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공을 나눌 때 무거운 짐을 지고 베이스캠프까지 같이 온 동료를. 회사 조직의 피라미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같이 한 동료와 후배 그리고 상사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유는 천군만마처럼 버티고 있는 그들의 어깨를 언젠가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시대 명장 백기의 단 한 가지 실수
완벽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화려한 전공은 물론 생명까지 잃은 인물이 있다.

바로 전국 시대 진나라 명장으로 훗날 진시황 천하 통일의 기초를 쌓은 ‘백기’다.

그의 빛나는 업적에 비해 최후는 비참했다.

그는 딱 한 번, 왕을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했고 왕은 그 소리를 듣고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백기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은 그가 소리 없는 전쟁에서 1패를 기록하며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전국 시대를 끝낸 이는 진시황제다.

그는 기원전 221년 천하 통일의 위업을 완성했다.

그의 천하 통일에는 수많은 공신이 있었다.

승사 이사를 비롯해 장군 왕전, 몽염 등이다.

물론 진나라의 천하 통일은 예견되었던 일이다.

진나라는 무려 55년간 재위한 소양왕 때 이미 천하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소양왕의 강력한 군대와 드넓은 영토, 비축된 군량은 고스란히 시황제에게 전달되었다.

시황제는 이를 잘 운용해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소양왕에게는 시황제의 ‘왕전’과 같은 인물이 있었다.

장군 백기다.

즉, 시황제의 천하 통일은 소양왕과 백기를 거쳐 시황제와 왕전, 두 콤비의 활약으로 가능했다.

백기는 왕전, 염파, 이목과 함께 전국 시대 4대 명장으로 불리는 ‘전투의 화신’이었다.

그는 30여 년간 7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장군으로 ‘무안군武安君’ 칭호까지 받았다.

그의 눈부신 활약으로 초나라는 수도를 옮겨야 했고, 조나라는 군사력 대부분을 상실했으며, 한나라와 위나라 등은 창을 거꾸로 들고 항복했다.

전쟁에 있어 절대 고수였던 그는 진나라 군사들에게는 승전의 보증 수표, 적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백기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에게는 라이벌이 있었다.

재상 ‘범수’였다.

그는 연전연승으로 공을 세우는 백기를 시기했다.

범수는 조나라 세객 소대의 세 치 혀에 넘어가 조나라 수도 한단 점령을 눈앞에 둔 백기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백기는 군대를 돌리며 땅을 쳤다.

“조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는데”라는 그의 아쉬움은 소양왕에 대한 불만으로 번졌다.

소양왕 역시 후회했다.

다시 조나라를 공격했다.

소양왕은 백기에게 군 지휘를 맡겼지만 백기는 병을 이유로 거절했다.

진나라 군은 조나라에 패배하고 말았다.

백기는 이렇게 말했다.

“내 계책을 듣지 않으니 조나라 군에게 신나게 얻어터지지.”
소양왕은 이 소리를 듣고도 꾹 참았다.

왕의 체면을 내려놓고 군 지휘를 부탁했지만 백기는 듣지 않았다.

범수가 이 틈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는 소양왕에게 ‘백기가 불충을 저질렀다’고 속삭였다.

자존심이 상해 있던 소양왕은 백기를 유배 보냈다.

범수는 이 기회에 라이벌 백기의 목숨을 노렸다.

그의 말에 넘어간 소양왕은 백기에게 자결하라 명령했다.

전국 시대 명장 백기는 역사에 남을 수많은 공을 세웠지만 단 한 번의 거부, 단 한 번의 불만, 단 한 번의 오만으로 목숨을 잃었다.

역사는 말한다.

세운 공이 높을수록 그것을 흔드는 경쟁자도 많다는 것을.

▶전쟁에서는 전승, 처세에서는 1전 1패
백기는 소양왕을 30년간 모셨다.

기원전 294년 좌서장에 임명되어 한나라를 공격하면서 백기는 역사에 등장한다.

그의 전공은 눈부셨다.

좌경으로 승진해 한나라, 위나라 연합군을 상대했다.

백기는 두 나라 군대를 맞아 대승을 거두어 무려 24만 명의 적군을 죽이고 적장을 포로로 잡았으며, 한나라 성 5개를 함락했고 황하를 건너 중원을 휩쓸었다.

이 공로로 백기는 국위로 임명되었다.

백기는 위나라를 공격해 60여 개 성을 점령했다.

그의 공격은 한나라, 위나라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강국 초나라도 백기의 공격에 수도 영성이 함락되었다.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는 연합군을 조직했다.

오로지 백기를 상대하기 위한 연합이었다.

결과는 백기의 대승이었다.

백기는 연합군 13만 명을 몰살했다.

백기는 태위가 되었고 사람들은 백기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

백기는 곧 한나라 형성을 공격해 5개 성을 점령하고 한나라 군 5만 명을 모조리 몰살시켰다.

그에게는 ‘인간 도살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원전 260년 장평 대전. 황하 북쪽의 상당 지역은 요충지였다.

상당 땅 대부분을 한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진나라는 상당 지역을 탐냈다.

한나라는 진나라군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거의 항복 직전이었다.

이때 상당 태수 풍정이 꾀를 냈다.

그는 조나라에게 상당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풍정은 조나라를 끌어들여 진나라에 맞설 계획이었다.

조나라 왕은 고민에 빠졌다.

상당은 중요한 요충지이지만 진나라와 일전을 각오해야 했다.

욕심이 앞선 조나라 왕은 한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양왕은 대노했다.

소양왕은 백기를 출전시켰다.

조나라 역시 노장 ‘염파’를 출전시켰다.

염파는 전국 시대 4대 명장 중 하나였다.

장평 대전에서 전국 시대 최고의 공격 고수 백기와 수비의 달인 염파가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염파는 진나라 군대와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구전에 돌입했다.

오래 버틸 경우 보급로가 길어지는 진나라군이 불리해지고, 이후 진나라군을 기습할 계획이었다.

조나라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백기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진나라 재상 범수가 반간계를 썼다.


“진나라군은 염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나라 조괄이 대장으로 올까 두렵다.

” 범수는 뇌물을 조나라 조정에 뿌렸다.

이 소문이 조나라 효성왕의 귀에 들어갔다.

효성왕은 염파의 소극적인 작전에 불만이 가득하던 차에 이 소문을 듣자 염파를 의심했다.

그는 염파 대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조괄은 우쭐한 마음에 백기에 맞섰다.

진나라군이 서서히 도망치자. 신이 난 조괄은 백기의 뒤를 쫓았다.

계속 추격하던 조괄이 이끄는 부대가 본대와 멀어졌다.

진나라군이 본대와 조괄 부대를 끊었다.

조괄은 포위되고 이윽고 고립되고 말았다.

조괄의 부대는 굶어 죽을 바에야 한바탕 싸우자며 진나라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결국 조괄은 전사하고 조나라군 40만 명이 포로가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상당 지역 출신이었다.

포로 40만 명,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나라 장수들은 백기에게 포로 처분을 물었다.

백기는 “그들은 조나라에 항복했다.

결국 진나라를 배신할 것이다.

모조리 죽여라.” 잔인한 명령이었다.

조나라군 40만 명은 생매장 당했다.

역사는 백기의 장평 대전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그의 잔혹한 성품에 놀랐다.


▶나의 실수가 상대에게는 치명적 상처
백기는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진군했다.

백기의 진나라 군은 막강했고 조나라 백성들이 백기에게 두려움을 품고 있어 한단 함락은 시간 문제였다.

조나라의 세력가 ‘소대’는 보물을 싸 가지고 진나라 승상 범수를 찾았다.

“백기의 공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진나라에서 백기가 위세가 왕을 능가합니다.

승상께서도 백기의 발 아래에 서야 할 것입니다.


범수는 소양왕을 찾아 “우리 군대는 지쳐 있습니다.

한단은 조나라의 수도로 총력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쉽게 함락하기 어렵습니다.

성을 바친다고 하니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우리 군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 소양왕은 백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백기는 불만이 가득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생각에 소양왕과 범수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몇 개월 뒤, 소양왕은 후회가 되었다.

군대를 조나라로 출전시키고 백기에게 사령관을 맡겼다.

백기는 “조나라의 군대가 철통 방어를 하고 초나라, 위나라가 협공을 하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소양왕은 듣지 않았다.

그는 왕릉에게 군대를 맡겼다.

하지만 왕릉의 군대는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참패했다.


백기는 “그것 봐라, 내 말을 듣지 않고 무리하게 조나라를 공격하니 이렇게 참패하지”라고 비아냥거렸다.

소양왕은 백기가 함부로 입을 놀린 것을 알고도 꾹 참고 다시 한번 백기에게 지휘를 맡겼다.

그러나 백기는 병이 중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소양왕은 왕흘을 대장군으로 조나라 정벌군을 출전시켰다.

하지만 조나라의 철통 수비에 막혀 왕흘은 참패하고 말았다.

소양왕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진나라군이 조나라에 졌다는 사실도 분했지만 백기가 명령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소양왕은 백기를 사병으로 강등시키고 귀양을 보냈다.

백기는 귀양을 가면서도 이죽거렸다.

범수가 소양왕을 찾았다.

“백기를 죽여야 합니다.

백기는 왕명을 거역했을 뿐 아니라 그가 다른 나라로 망명한다면 진나라가 위험에 빠집니다.

우리가 쓰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습니다.


소양왕은 사신을 보냈다.

백기는 두우에 도착했다.

이때 소양왕의 사신이 달려와 백기에게 단도를 주었다.

백기는 칼을 쥐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이유를 모르겠다.

딱 하나,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이 투항했을 때 그들을 모조리 생매장해 죽인 것이다.

그 원한이 사무쳐 내가 이 지경에 빠진 것이다”고 한탄하며 자결했다.

전국 시대를 풍미했던 백기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최후였다.


백기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몰랐다.

단지 조나라 군사의 원한이 자신을 해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1인자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1인자는 자신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더구나 재상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범수와 대립하면서 그의 경쟁자가 된 것도 이유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백기는 천하 명장.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동료이자 경쟁자인 범수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왕전과 더불어 최고의 명장이었지만 인품이나 처세에서 결점이 있었다.

한 자가 길긴 하지만 더 긴 것과 비교하면 짧고, 한 치는 짧긴 하지만 더 짧은 것과 비교하면 길다.

한 자가 상황에 따라 한 치만 못한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장단점이 다 있지만 넘치는 것이 모자라는 것보다 결코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백기는 정치판 초보였다.

그는 노련한 범수에게 당했다.

범수는 위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진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뛰어난 머리로 계책을 마련해 소양왕의 신임을 받았다.

범수는 타국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재상에 오르기까지 부단한 노력과 치열한 정치 투쟁을 겪은 정치9단이었다.

전쟁터와 정치판의 백전 노장끼리의 대결에서는 권모술수를 익힌 범수의 승리가 뻔한 결과였다.


백기도 제거하고 확고한 진나라 2인자가 된 범수. 소양왕의 신임으로 제후의 지휘까지 오른 그에게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채택’이 승상의 자리에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분노한 범수는 채택을 만났다.

직접 만나 본 채택은 평범한 선비였다.

범수가 안도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채택이 말했다.


“승상,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백기의 예를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은퇴하시는 것이 노후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 범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채택을 승상으로 추천하고 바로 은퇴했다.

이 선택으로 범수는 죽을 때까지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가문도 보존할 수 있었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52호 (20.11.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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