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M M-PRINT GFW CITYLIFE LUXMEN 매경이코노미 MBN골드 MBN 매일경제
로그인|회원가입 |시청자 게시판
종목검색
  • 종목검색
  • 통합검색

헤드라인

광고
프로그램 바로가기
프로그램 바로가기 닫기
가나다순 카테고리순
> 뉴스 > 기사
기사목록|||글자크기 
이건희·비서실·사장단 `3각 편대`가 초일류 삼성의 힘
기사입력 2020-10-27 20:18
  • 기사
  • 나도 한마디
공유하기 
◆ 이건희 회장 타계 ◆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선언과 삼성의 발전은 일본 기업들이 기존 경영 방식으론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 일본의 대표적인 삼성 전문가인 야나기마치 이사오 게이오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삼성그룹 제2의 창업을 이룬 이 회장의 경영이 일본 재계가 스스로의 문제점을 절감하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1990년대 이병철 회장으로 박사 논문을 쓴 후 삼성그룹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이 회장의 최고의 공적으로 1993년 프랑크푸르트선언을 꼽았다.

국내 1위에 안주하려던 당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이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환골탈태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야나기마치 교수는 이 회장의 리더십과 이를 그룹에 효과적으로 전파한 비서실, 이를 실행으로 옮긴 우수한 경영진이라는 세 요소가 어우러져 이뤄낸 성과로 꼽았다.

그는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해왔던 비서실이 정치적 이유로 사라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염려했다.

또 그룹 경영을 승계한 이재용 부회장 앞에는 한국 기업으로 글로벌을 지향했던 이 회장 시절과는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회장의 경영에 대한 평가는.
▷제2의 창업이란 말이 딱 맞는다.

부친의 삼성과 이 회장의 삼성은 달랐다.

삼성전자는 1960년대 말에 시작한 작은 전자회사였지만, 19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후 본격적으로 반도체를 키우고 제일제당이나 신세계를 떼어낸 것은 이 회장이다.

지금의 삼성을 창업한 사람은 이 회장이라 할 수 있다.

부친 시대엔 현대그룹 등과 자웅을 겨루는 한국 기업 삼성그룹이었지만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전자산업계의 중요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이 회장의 최고 업적은.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최고의 업적으로 생각한다.

1987년 회장이 됐지만 1993년 프랑크푸르트선언까지는 외부에 나서지 않았다.

6~7년간 삼성은 아버지 시대의 임원들이 이끌었다.

사실상 이 회장의 데뷔는 1993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시기 임원들은 국내 넘버원이라는 안정적 지위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이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이 중소기업에 불과하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선언 때까지 6~7년이란 시간을 갖고 그룹의 방향성을 깊게 고민했고, 그 결론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신경영선언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 임원을 대상으로 위기감과 미래 비전을 공유했지만, 그룹 전체로 확산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 회장의 신경영선언이 조직 전체에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하고 싶다.


―위기를 강조하는 기업, 경영자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에는 그룹 헤드쿼터 역할을 하는 비서실 존재가 있었다.

회장과 일체화된 비서실이 회장 의지를 그룹에 퍼트리고 우수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이를 실행했다.

삼성의 강점은 회장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래전략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바뀌어온 비서실과 CEO라는 조직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

이 회장은 우수한 경영자로 시대를 읽고 미래를 앞서 보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는 전문경영자의 역할과는 다르다.

많은 기업이 이병철 회장을 따라 비서실을 만들었지만 삼성 비서실의 역할과 수준을 따라한 곳은 없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이 2011년 4월 21일 서울시 삼성 서초사옥 집무실에 사실상 처음 출근했다.

이날 이 회장이 이재용 사장(왼쪽)과 서초사옥을 나서고 있는 모습. [매경DB]

―일본 기업에 준 영향은.
▷삼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그전까지는 일본을 따라잡자며 일본을 의식했다.

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삼성이 힘을 쌓았고 일본 기업을 언급하는 사례도 줄었다.

일본 기업들은 삼성의 성장을 보면서 지금 방식으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반성하게 됐다.

'오너의 존재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등 삼성의 강점에 대한 얘기는 많았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 그 위력이 퍼포먼스(실적)로 확인됐다.

일본 기업들도 그간 안주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재벌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재벌이란 형태가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시대가 있었다.

대량 생산· 대량 수출 시대엔 재벌이란 형태를 통해 여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재벌 시스템이 맞는지 아니면 전문화가 옳은지는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일이다.

여기에 정치 논리가 끼어들면 안 된다.

또 오너만이 가능한 일이 있다.

삼성의 경영진은 매우 훌륭하다.

다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집중해서 보게 마련이다.

그룹 전체를 보고 책임지는 일에는 오너가 필요하다.

주식회사는 유한 책임이지만 오너는 사재도 털어넣어야 하는 무한 책임에 가깝다.

또 오너의 인맥과 정보는 전문경영인이 갖기 어려운 것이다.

이 회장의 경우 세지마 류조 전 이토주 회장이 일본 재계의 주요 인사를 소개시켜주고 마치 자신의 후계자처럼 키웠다.

또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 일본 총리를 일반 전문경영인이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쉽겠는가. 이 차이에서 오는 정보력 차이가 존재한다.

이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2명의 스승으로 부친과 장인을 꼽았다.

한국 제일의 기업인과 지식인으로부터의 교육이 이 회장 저력의 원천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과제는.
▷이 부회장이 처한 상황은 부친의 상황과 매우 다르다.

부친의 신경영선언은 사실상 한국 내 삼성을 상대로 한 메시지였다.

지금 이 부회장의 말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수장의 발언으로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된다.

이에 대해 시장, 글로벌 주주는 물론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등 다양한 면을 생각해야 한다.

부친이 신경영선언을 하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글로벌 기업이 된 이상 글로벌 기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반도체, IT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부터 어떻게 그룹을 끌어갈지, 국내외 여러 요인을 고려해 어느 타이밍에 발표할지 등도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도쿄 = 정욱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삼성전자 #레이

기사목록|||글자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