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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 모아상이 전하는 교훈
기사입력 2020-09-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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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의 모아이 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답하라 경제학 시즌2-40] 남태평양 연안을 따라 길게 자리하고 있는 칠레에는 신비로운 섬이 있다.

모아이 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이 그곳이다.

현재 이스터 섬에는 약 600개 모아이 상이 있다.

이들 석상의 높이는 3m부터 가장 큰 것은 20m가 넘는 것도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상의 무게는 대략 20t에서 90t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스터섬의 거대 석상이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모아이 석상은 길쭉한 얼굴과 코를 가진 독특한 외모 때문에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대륙과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 이처럼 거대한 구조물이 발견된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없어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손꼽히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스터섬의 크기는 제주도 면적의 10분의 1 수준이며, 18세기 무렵 최대 인구가 5000~600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작은 섬에 있었을 만한 기술 수준이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거대한 석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모아이 석상을 두고 외계인이 지구에 다녀간 흔적이라고 부풀려 말하기도 한다.


아직 이스터 섬의 모아상이 어떻게 제작되었고,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학술적으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모아이 석상은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몰락을 초래한 단서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과거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섬에 있는 야자수를 이용해 커다란 카누를 만들었고, 이것을 이용해 먼 바다로 나가 고래를 포획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지역과 교류를 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있다.

그런데 가축이 없던 섬에서 거대한 모아이 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폐쇄된 섬 규모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는 막대한 노동력이 투입되었고, 석상을 운반하고 제작하는 데 엄청난 목재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자원이 한정된 작은 섬에서 거대한 석상을 만드는 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다보니 정상적인 생산 활동과 대외 교류를 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섬 주민들을 먹여살릴 식량 생산이 감소하고, 지역이 고립되면서 이스터 문명은 자멸했다는 것이 섬이 몰락한 이유에 대한 유력한 가설 중 하나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은 지배계층이 피지배 원주민이나 주변 부족에게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제작한 베블런 효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베블런재는 자신의 경제적 계급을 과시하기 위한 소비활동으로 쓰이는 재화를 뜻한다.

따라서 모아이상과 같은 베블런재는 실생활에 쓸모가 없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유물을 과시하려면 더 크고, 더 소모적일수록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베블런재는 경제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요의 법칙'에서 예외적인 재화이다.

즉 일반적인 재화는 가격이 상승하면 구매량이 줄고, 가격이 하락하면 구매량이 증가해야 하는데 베블런재는 예외다.

가격이 상승하면 판매량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량이 증가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구매량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량이 감소한다.

베블런재는 소비가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만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과 평가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하고, 타인과의 긍정적인 교류에 만족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SNS가 활성화됨에 따라 자신의 돈이나 시간을 사용하는 목적이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것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시대 흐름에 힘입어 고급 승용차나 명품 브랜드 제품들은 오히려 가격이 높을수록 판매가 증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자동차를 고를 때 승차감뿐만 아니라 차에서 내렸을 때 다른 사람들이 차 주인을 얼마나 동경하는지를 나타내는 '하차감'도 생각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과시적 지출 경향이 합리적인 투자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투자를 할 때는 '수익'이라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만을 고려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베블런 효과와 유사한 특징을 갖는 투자 행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주요 아파트는 가격이 상승할수록 수요가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사옥이나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다.

주요 거점 지역에 있어야 성장하는 업체로 홍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실제 쓰임새보다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며 부동산 거래를 한다.


물론 자산 시장에서 가격이 상승함에도 수요가 더 증가하는 것은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두고 비효율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자산시장에서는 주소를 쓸 때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내가 이런 기업을 보유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투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구입하는 장신구나 자동차는 사람들에 대한 자랑 거리가 될 수 있고, 사회적인 관계성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같은 소비에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투자는 그렇지 않다.

내가 어떤 회사의 주인이고, 상업용 자산의 주인인 것을 자랑하려고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률이 첫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스터 섬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투자에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늘면 경제의 건전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위 자산 시장에 버블이 발생하기 쉽고, 제한된 자원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데 투자되기보다는 소모적인 곳에서 사회 구성원들 간 제로섬 게임으로 소진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

따라서 소비나 투자에서 베블런 효과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천장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 주식 가격, 그리고 이로 인한 사치재 시장에서의 명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가 만연하면 우리 경제도 이스터 섬의 저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병일 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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