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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파벌·非세습 출신 日총리…국가 이끌 리더십은 미지수
기사입력 2020-09-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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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오른 日스가시대 ◆
일본 총리직을 예약한 스가 요시히데 신임 자민당 총재의 애독서는 '도요토미 히데나가, 어느 보좌역의 생애'란 책이다.

히데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생으로 보좌관 역할을 했다.

뛰어난 실력을 기반으로 히데요시의 일본 전국 통일을 실현시킨 핵심 참모다.

스가 총재는 자신과 히데나가의 정치 인생이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여왔다.

스스로 '멸종위기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 정계에서 드문 지방·비세습 출신 자수성가형인 스가 총재는 리더보다 참모 역할에서 자신의 활로를 찾았다.


스가 총재는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에 위치한 딸기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수완가인 부친 덕에 가난하진 않았지만 부자간 갈등이 적지 않았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도쿄로 상경해 골판지 공장에서 일하다 2년 늦게 호세이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설비 회사에 취직했으나 세상을 바꿀 일은 아니란 생각에 정치로 눈을 돌렸지만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후 호세이대 취업상담소 소개로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당시 중의원 의원 비서로 일을 시작한다.

비서로 11년을 일한 뒤 지방의회(요코하마시의회) 2선을 거쳐 47세이던 1996년 중앙 정치 무대로 진출했다.


일본 정치의 핵심이라는 자금력, 지역 기반, 지명도 등이 없어 법안을 발의할 때도 애를 먹어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대 초반 만경봉호 일본 입항 금지를 추진할 때였다.

도와줄 사람을 찾던 과정에서 그가 의기투합한 사람이 아베 신조 총리(당시 관방장관)였다.

대표적 세습 정치인인 아베 총리의 부족한 부분을 스가 총재가 채웠다.

아베 총리를 활용해 자신의 뜻을 펼치는 대신 자신은 참모 역할에 충실했다.

스가 총재가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기가 아베 총리의 1차 집권(2006~2007년)부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아베 1차 내각에서 총무상(행정안전부 장관에 해당)을 맡았고, 2차 내각(2012~2020년)에선 관방장관을 역임했다.

관방장관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역할을 수행하며 위기 대응을 총괄한다.


기반이 없다는 약점을 그는 불도저 같은 업무 추진력과 성실함, 국민 피부에 와닿는 정책으로 메웠다.


아베 총리가 인터뷰에서 "스가 관방장관이 총리가 되면 가장 큰 어려움은 자신과 같은 유능한 관방장관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라며 업무 능력을 추켜세울 정도다.


스가 총재의 업무 추진력 핵심은 관료 사회에 대한 장악이다.

그의 유일한 저서인 '정치가의 각오, 관료를 움직여라'(2012년)에선 정치가의 역할을 관료를 활용해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활용하는 것이 인사다.

2차 아베 내각에선 주요 부처 고위 공무원 인사를 담당할 내각 인사국을 신설했다.

정권이 지향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는 강등시키는 대신 적극 수행할 사람을 발탁 승진시키는 인사로, 이른바 손타쿠(알아서 기는) 관료 사회를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줄이겠다며 NHK 경영 개혁이란 이름으로 개입하는 등 정책 수행 과정에서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정치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술 한잔 마시지 못하지만 매일 조찬과 오찬 각각 1건, 만찬 2~3건 등을 소화하며 의견을 듣고 있다.


스가 총재의 대표 정책은 국민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많다.

의원 시절에는 도쿄와 지바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요금 인하, 총무상 시절엔 지방세를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 낼 수 있는 '고향납세'를 주도했다.

또 관방장관 시절에는 휴대전화 요금 인하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또 부처별로 관리되던 댐 관리를 일원화해 홍수, 태풍 등 수해에 대한 대비 태세도 강화했다.


다만 각론에 강하지만 총론에 해당하는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비전이나 리더십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가 총재의 좌우명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다.

후원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격전 끝에 신승을 거둔 첫 선거에서 의지의 중요성을 느꼈다는 것이 좌우명을 택한 이유다.

2009년 체중을 감량해야겠다고 생각한 후엔 4개월 만에 76㎏에서 62㎏으로 체중 감량에 성공한 것을 의지가 강한 사례로 들기도 했다.

일상에서도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복근 운동 100회 후 언론 보도 확인, 6시 30분부터 40분간 산책 후 조찬 일정을 반복한다.


상명하복식 위계질서를 중시한다는 평도 있다.

한 일본 중견 언론인은 스가 총재가 "아들 셋의 학업과 관련해 유일한 조언이 중·고등학교에서 스포츠부에 가입하라는 것이었다"며 "상명하복이 가장 강한 스포츠부를 통해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스가 총재는 아베 총리가 전공인 외교에 집중하는 동안 내치를 총괄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가라테 외교를 펼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도를 즐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학 때 배운 가라테를 화제로 외교하겠다는 설명이 오히려 외교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12일 토론회에선 외교 역량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이어지자 "(외교는) 아베 총리와 상담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 등에서는 스가 총재가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내년 9월까지)를 담당할 비상내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지금까지 스가 총재가 걸어온 행보를 고려하면 1년 뒤에도 자민당 핵심부 의도대로, 전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란 전망이 나온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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