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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까르르` 웃음 넘치는 도서관
기사입력 2020-02-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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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키고 있는 여백서원 안에는 몇 가지 작은 시설이 있다.

본채의 서재 외에도 별도의 '한 사람을 위한 괴테 도서실'과 '스무 명을 위한 파우스트 극장', 작은 갤러리, 전망대 등. 그런데 이즈음 서원지기인 내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건 작년에 문을 연 '여백 어린이 도서관'이다.


서원이란 그 본디 뜻이 '책 집'인 만큼 본원 안에는 책이 제법 있지만 죄다 어른들을 위한 것이어서 가끔씩 어른을 따라오는 어린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여러 해 전부터 계획해 온 것이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책도 읽고 놀기도 하고, 또 넓은 뜰을 뛰놀다가 다시 찾아들 수 있는 자기들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 물론 외진 곳이라 쉽진 않겠지만 지역의 어린이들이 차츰 찾아오게 된다면 더욱 좋을 일 아니겠는가.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읽고 난 많은 책들을, 아이들을 키워준 귀한 책들을, 버리지 말고 두었다가 동네 어린이들에게 빌려주는 일을 노년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큰 시점과 내가 그런 조용한 일을 구체적으로 구상이나마 할 수 있게 된 시점과는 시차가 너무 컸다.

내 아이들 스스로가 잠깐 그런 '책 대출'을 직접 해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은 도무지 그런 차분한 시간에 이르지 못하는 사이 그 귀한 책들이 흐지부지 다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꿈마저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작더라도 도서관을 만들자면 건물과 책이 필요하다.

계획은 오래되었으나 형편이 여의할 리 없어 현실적인 방법을 찾았다.

서원 입구에 차 두어 대가 들어갈 제법 널찍한 차고가 있는데 그것을 리모델링했다.

보온이 잘되도록 벽을 두껍게 보강하고 지붕을 반 층 정도 들어 올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락을 지어 넣었다.

이 다락방에다 잠을 잘 수도 있는 작은 방 하나까지 덧달고 나니, 차고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도서관 공간이 나왔다.

값싼 자재로 겨우 덮었던 지붕에다 어떤 모르는 분이 아주 고운 기와를 얹어 주고 가시기도 했다.

혼자 빈손으로 벌인 일이라 오히려 뜻이 모여든 것 같다.


책도 빠르게 채워졌다.

평생 어디 손 내밀지 못하고 살아 왔는데, 이번만은 내가 소문을 냈다.

예전의 나처럼 아이들이 크면 그 애들이 보던 책을 둘 데가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강연하러 가면 듣는 분들이 몇 권씩 책을 들고 오기도 했고, 서원까지 직접 책을 실어다 주는 분들도 있었다.

지금도 어린이 도서관 입구에 가끔 낯선 책들이 놓여 있기도 하다.

빠르게 작고 예쁜 도서관 하나가 생겨나 자리가 잡혀 갔다.

책뿐만 아니라 나도 어딜 가면, 예전에 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건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물건들이 눈에 보이면 잔뜩 사 들고 오곤 한다.

작은 꿈 하나가 서원 초입에 현실로 서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외진 곳이라 누가 오랴 싶었는데 도서관이 서니 찾아오는 어린이들이 생겨났다.

부근에 사는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제법 거리가 있어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오는 그 아이들이 예뻐서 그중 둘을 사서와 부사서로 임명했다.

사서는 6학년, 부사서는 3학년이다.


그러다 작년 시월에 개관식을 했는데, 대단한 잔치였다.

가까이서 또 멀리서 특별히 온 많은 어린이들이 모두 흰 장갑을 끼고 금색 가위로 함께 색색깔 테이프를 잘랐다.

한 어린이도 빠짐없이, 또 어른들까지 모두 다 가위를 잡느라 테이프 커팅을 세 차례나 했다.

어린이들의 축하 공연도 있었다.

어린이를 따라온 어른들도 어린이 도서관 한쪽의 '시(詩) 도서관'에 앉아 있다가 간다.

또 어른 제자들이 일 보따리를 들고 와서 살그머니 거기 있다가 가기도 한다.

책이 있는 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든 다 귀하고 아름답고, 세상에 대한 신뢰를 준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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