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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법 이야기] 기생충의 `또 다른 계획?`
기사입력 2020-02-1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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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주인공들의 '계획'으로 시작해서 '계획'으로 끝난다.

영화 첫 장면은 충숙(장혜진)이 남편 기택(송강호)을 발로 툭툭 걷어차 깨우면서 '계획이 뭐냐'고 힐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택은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면서 집을 나서는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하면서 대견해한다.

하지만 이들이 벌인 사기극 계획이 틀어지자 기택은 자식들에게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바로 '무계획'이라고 설파하고 가든파티의 참극 현장에서 총총 사라져버린다.

여전히 기우는 '근본 계획'을 다시 세운다.

아버지를 지하실에서 그냥 걸어 올라오셔도 되게 하려는 무망한 계획을.
기우와 충숙은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다.

한 달 만에 병상에서 깨어난 기우는 경찰같이 생기지 못한 경찰관을 보고 헛웃음을 연신 내뱉는다.

기택을 검거하려는 형사는 기우를 미행하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삑사리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사법적 느슨함 때문에 기우와 충숙은 비교적 안온한 재판을 받는다.

영화 전반을 감싸고 흐르는 이들의 정교한 계획과 무계획은 관객을 스토리 속으로 몰입시키는 마성을 지녔다.


필자는 재판 실무가를 겸해 오판 없는 진실 파악과 추리를 전공으로 삼아 배우고 가르치는 연구자다.

직업 탓인지 이런 강력사건을 그리 느슨하게 놓아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영화의 세부 내용을 수사관 관점에서 관찰하다 보니 문득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흉기에 찔린 기정(박소담), 근세(박명훈), 동익(이선균)과 세 사람 시신이 확인되는 사건 현장. 다수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범행 외형을 확인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문제는 범행 동기. 기택이 현장에서 근세가 아닌 동익을 공격해 살해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 대목은 영화의 큰 주제와도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영화평론가들의 허다한 논평 대상이다.

다만 수사관은 증거로써 그 이유를 캐내야 한다.

주요한 탐문 대상은 충숙과 기우. 그들은 사건 당일까지 일어났던 일의 경과를 영화 내용처럼 진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물증이 말해주는 바는 사정이 좀 다름이 밝혀진다.

이제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다.


사건 관계자의 핸드폰 내역 분석은 필수 코스다.

충숙의 폰 번호는 010-7×××-×××5다.

이 폰으로 사건 전날인 6월 30일 밤 11시 48분 기우에게 '부부 완전 떡실신'이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한편 영화 속 진술에 따르면 기택이 문광(이정은)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기정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 직후 연교(조여정)에게서 문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때 사용한 폰이 충숙의 폰과 같은 번호라는 점이다.

이는 영화 속 폰 번호 화면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택이 사용하던 폰을 충숙이 가사도우미가 된 뒤 넘겨받아 사용했다는 것인데 둘 사이 관계를 숨겨야 한다는 진술의 근본 설정과 조금 어긋난 일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문자 교신을 한 날이 6월 12일이라는 점이다.

확인된 재학증명서 위조일은 6월 16일이고 그 이후 모든 사기극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돌연 그 며칠 전부터 이미 연교와 충숙(또는 기택)이 문자 교신을 한 바 있었다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이 되고 만다.


수사관은 동익에 대한 기택의 살인 범행 동기가 석연치 않은 점에 더해 뒤죽박죽한 이들 진술 내용에는 필경 무슨 흑막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관련자들이 말하지 않은 '또 다른 계획'을 캐기 위해 수사 대상은 더 확대될 여지가 크다.

기택과 근세 모두 대만 카스테라 대리점 실패라고 하는 공통된 궁지에 처한 일까지 확인된 바라면 의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유독 폰 교신 내용이 스크린 전면에 자주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디테일의 귀재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가 옥에 티 실수를 저질렀을 리 없다.

영화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통화, 문자 교신 내역을 통해 풀다 보면 아예 새로운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 듯도 하다.

어쩌면 감독이 영화 줄거리에 숨겨둔 이 불씨를 가지고 '또 다른 계획'을 모색하는 공상에 이르다 보니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더 커진 느낌이다.


다만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귤이 없더라도 귤을 맛있게 먹는 비결은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귤이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된다"는 이창동의 영화 '버닝' 속 한 구절이 떠오른다.

무계획이라는 계획을 세운 다음, 계획 없음을 깨끗이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계획의 실패로 인한 시시포스 고뇌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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