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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정말 잘 태어나셨어요
기사입력 2020-01-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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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엔 매년 되풀이하는 일이 많다.

미국은 양력 설을 지내기 때문에 1월 1일에 우리는 떡만둣국을 먹고 외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한다.

절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우리 아이들도 세뱃돈이라는 인센티브 때문인지 공손하게 세배를 한다.

이렇게 새해 축복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가족과 함께 지낸다.

그래서 항상 새해 다이어트는 1월 2일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또 나의 생일인 1월 10일이 가까워지면 1주일도 하지 않은 다이어트를 잠시 중단할 생각에 들뜨고, 생일날엔 나의 삶을 뒤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또 허락받은 생의 한 해를 의미 있게, 작년보다 더 잘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아내가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또다시 가족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피칸 파이를 버번 위스키를 넣은 정통적인 레시피로 만들었다.

설탕과 물엿도 아끼지 않아 나의 입맛에 딱 맞는 파이가 생일 케이크 대신 상에 올라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1월 10일에 접하는 또 하나의 전례가 생겼다.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올 때마다 울리는 페이스북 알림음을 듣게 된 것이다.

1년 내내 생각지도 않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받고 '좋아요'를 누르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다.

나처럼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한국과 미국에 있는 사람은 이것이 시차 때문에 약 하루 반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간단하게 "Happy birthday"나 "생일 축하해요"로 인사를 하고, 생일 케이크나 샴페인을 터뜨리는 이모지를 곁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받은 메시지 중에는 마음을 특별히 감동시키는 한마디가 있었다.

잊고 살았던 나의 가치, 우리 모두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기억하게 해준 이 메시지는 작년 3월에 만나게 된 한 지인으로부터 왔다.


친부모와 살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겠다는 열정이 나보다 훨씬 더 뜨거운 그녀는 딸 둘을 입양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런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 생각을 깊게 하는 분이고 그 때문에 미국 유학까지 했다.

나에게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에 그녀는 "정말 잘 태어나셨어요"라고 썼다.


내가 정말 잘 태어났다는 말은 생일 축하 메시지만이 아니라 평생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다.

더구나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장애 때문에 속상해 하거나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내가 괜히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나도 비슷한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혼 생활 9년 만에 기적적으로 얻게 된 아들을 임신한 아내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날 아기"라며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곧 태어난 데이비드를 품에 안을 때면, 이 소중한 아기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가슴이 벅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정말 잘 태어났다는 말, 그가 세상에 오게 돼 너무 좋다는 말을 똑똑하게 해준 적이 없다.

그리고 6년 전에 한국에서 온 딸 예진이에게도, 심지어 평생 나와 함께하겠다며 24년 전 큰 삶의 모험을 시작한 나의 아내 그레이스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매년 한 번씩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고, 태어난 날을 같이 축하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더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나누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언급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 예를 들어 애널리스트, 가정주부, 학생 등 일의 결과와 상관없는 소중함을 항상 기억하며 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올해부터는 노력해야겠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이나 말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가 무엇을 좀 더 열심히, 혹은 좀 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도 그의 소중함을 터놓고 자주 표현하는 버릇을 가져야겠다.


[신순규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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