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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하지만 일에는 엄격”…故 구자경 회장 25년 경영 발자취
기사입력 2019-12-1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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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2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전경련 회장 이취임식을 갖고 있는 구자경 당시 LG 회장(왼쪽)과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사진출처 = 연합뉴스]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다.


구 명예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인이다.

취임 당시 260억원이던 매출을 30조원대로, 임직원수는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리는 등 뛰어난 경영성과를 이뤘다.


고인은 검정 뿔테안경에 경상도 사투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구 명예회장은 안정과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스타일로 유명했다.

경영혁신을 위해서는 단호하지만 직원들과 소통하고 호흡할 때는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고인이 이끌던 LG는 ‘보수적인 기업’의 대명사로 불렸고, 대기업의 부침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도 특혜나 이권과 관련해 잡음을 일으킨 사례가 거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명예회장은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됐다.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은 1950년 6남 4녀 중 장남인 구 명예회장을 회사로 불러들인다.


구 명예회장은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그룹의 모회사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경영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69년 구인회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LG가의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경영을 이어받아 1970년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1999년 고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과 고 구본무 전 LG회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 = LG]


구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회사를 한국 기업 럭키금성에서 세계적인 기업 LG로 성장시켰다.


고인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로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특히 주력했다.

그 결과 LG그룹이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총수의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권한을 이양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한 것도 구 명예회장이다.


그는 1995년 1월 럭키금성 명칭을 LG로 바꾸고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겨줬다.


구 명예회장은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사람만이 경쟁력이라는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 철학을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 후에도 이 같은 소신을 갖고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공을 들였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하고,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자연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그는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면서 된장과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지난해 타계한 장남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1월 별세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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