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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스스톤 blitzchung 선수 징계 사태를 바라보며
기사입력 2019-10-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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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57] ◆오랫동안 메시징에 주력한 블리자드의 변심인가?
게임사 블리자드는 오랫동안 작품을 통해 특정한 가치를 이야기해왔다는 점으로도 주목받았다.

대형 게임 제작사가 다룬 주제들은 나름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게임 콘텐츠 안에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아내거나 그 주변 설정과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동시대의 이슈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 2'의 서사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의 첫 확장팩 이름은 '자유의 날개'였다.

독재 체제에 저항해 우주를 떠돌며 싸우는 레이너 특공대가 그 중심에 섰고, 아크튜러스 멩스크라는 절대군주가 대항마로 등장했다.

첫 번째 이야기가 독재에 맞서는 투쟁을 다뤘다면,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공허의 유산'은 소수자와 차별의 문제를 다뤘다.

'진정한 프로토스' 이외의 것들로 분류된 기계프로토스, 다른 사상을 가진 프로토스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과정이 주로 다루어졌고, 그를 통해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스타크래프트 2'의 최종장이 던져준 메시지였다.


직접적인 메시지 외에도 블리자드의 행보는 여러모로 주목받았다.

'오버워치'에서 성소수자 캐릭터가 전면에 부각되면서 벌어진 논쟁들은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닐 것이다.

메이저 미디어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매체로서 '오버워치'는 주요 캐릭터들 중에도 성소수자의 존재가 있음을 드러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가로쉬 헬스크림으로 대변되는 '진정한 호드'의 등장과 몰락은 자민족중심주의가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한 훌륭한 재현이었다.

특정 기업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부터의 반대와 지지 철회가 이어질 가능성을 담기에 때로는 기업가치의 감소를 각오하기도 하는 일이었다.

그 위험한 줄타기를 블리자드는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해온 바 있었다.


◆블리자드,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 발언 게이머를 징계하다
2019년 10월 7일 벌어진 사건은 그러나 그전까지 블리자드가 보여준 행보와는 사뭇 다른 스탠스를 보여주었다.

하스스톤 마스터즈 아시아태평양 대회에 출전한 홍콩 출신의 blitzchung 선수는 경기 종료 후 승리 선수 인터뷰에서 8글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자는 제안에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홍콩 민주화운동의 캐치프레이즈를 외쳤다.

복면금지법과 최루탄 발포에 항의하는 의미로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였다.

캐스터들도 어느 정도 사전 교감이 있었던 듯, 발언을 요청한 뒤 부스 아래로 숨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이 발언 직후 블리자드는 blitzchung 선수에게 출전 정지 1년, 그랜드마스터 자격 회수, 상금 몰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또한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캐스터들도 해고되었으며, 해당 경기 영상은 공식 VOD에서 삭제 처리되었다.

징계의 근거는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대회 정관과 참가 선수의 계약서 조항이었고, 뒤이어 중국 웨이보에는 이번 사태에 대해 블리자드가 중국 측에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사과하는 글이 올라온 사실이 캡처를 통해 퍼져나갔다.


홍콩 민주화시위 사태가 결코 가벼운 뉴스가 아니기에 이슈는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특히 그동안 블리자드가 오랫동안 자신들의 콘텐츠 안에서 이야기하던 가치들과 무척 상반된 결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사후 조치로 올라간 중국 웨이보의 사과문이 사실상 이 사태에서 중국 눈치를 크게 보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중국 바깥 여론은 점차 안 좋은 방향으로 불타올랐다.

여론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짚어볼 수 있는데, 첫째는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 발언을 징계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견이고, 둘째는 블리자드라는 게임사가 그동안 가져왔던 행보에 대한 비판이다.


◆공정을 위한 징계가 아니라 '명백한 편들기'로서 징계였다
첫 번째 지점을 우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들은 실제로 정치적 퍼포먼스나 발언들을 금지하며 그에 따른 징계 절차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회 규칙에는 명문화된 내용이 없었다고는 하나 선수 계약서상에는 금지 조항이 있었다고 알려졌고, 스포츠 경기에서의 정치행위 금지가 아주 일반의 상식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이해의 소지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blitzchung과 캐스터에 대한 징계가 중립적 입장에서의 징계 수위를 넘어섰다는 데 있었다.


blitzchung이 받은 징계는 비록 나중에 정정되긴 했지만 그랜드마스터 박탈, 상금 몰수, 출전 정지 1년이다.

일반적인 징계들에 비해 과하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는 중국 웨이보에 내걸린 블리자드의 공손한 사과문과 엮인다.

대회 규정을 지키고 공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존재를 의식한 징계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 징계는 결코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 그대로 중립 그 자체를 위할 때 유의미하다.

한쪽 입장에 무게를 싣는 순간 중립을 위한 도구는 그 자체로 특정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

이번 하스스톤 징계 사태가 바로 그렇다.


'명백한 편들기'의 배경은 그리 어렵지 않게 중국 시장임을 알 수 있다.

블리자드가 중국 시장에 쓰는 신경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워크래프트 3'에서 일종의 숨겨진 요소로나 등장했던 판다렌이 아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판다리아의 안개'라는 이름으로 메인 스토리에 편입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기업이 시장 눈치를 보는 일은 문제가 되지도 않고, 또 사실 그동안 블리자드가 보여왔던 행보와 크게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두 번째 이슈로 지적한, 그동안 블리자드가 가져왔던 메시지의 방향성도 같은 맥락선상에 위치한다.


◆이윤을 향하는 기업의 입장이라는 면에서 블리자드는 같은 선택을 했다
글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블리자드 콘텐츠의 메시지 방향성들이 블리자드라는 기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과한 부분이 있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이다.

여유로운 매출과 이윤이 보장될 때, 그 매출처를 해치지 않는 범위까지가 대체로 기업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한계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레이너 특공대와 무분별한 빈민지구 재개발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투사 루시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리스크가 되지 않는, 교과서 수준의 이야기이기에 기업이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부담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2'의 스토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인종국가인 미국 사회가 높은 우선순위로 추구하는 통합의 이슈와 맞닿아 있기에 마찬가지로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메시지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 이동이 늘어나고 이주노동자처럼 노동 시장이 연결됨에 따라 주요 선진국들 안에서 일어나는 인구와 인종 변화는 다인종사회의 이슈를 미국 밖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메시지들은 결국 시장에서 이윤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에 채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소수자나 인종 문제처럼 매우 첨예해 보이는 이슈들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게임 밖까지 확대해서 생각해도 무리가 없는데, 이 또한 시장을 구성하는 인구가 변하고 이러한 이슈를 메시징하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되기에 가능한 일인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나이키가 갑자기 페미니즘을 지지한 것이 나이키 구성원이 페미니스트라서일까? 시장이 그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로 구설에 올랐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최근 10년 들어 인종과 성별 면에서 기존의 구태로부터 벗어난 행보를 보이는 이유가 단지 그들이 새로운 조류에 눈을 떠서일까? 아니, 시장이 그렇게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눈이 찢어진 '뮬란'이 신흥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에서 먹힐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 사태는 조금 독특한 시장 구성이라는 부분으로부터 기인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 시장. 시장의 소비자 개개인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이 거대 시장은 우리가 아는 그 대중문화 시장과는 또 다른 면을 갖는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에서 홍콩 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완전히 다른 입장이라는 점은 최대 시장에서의 이윤을 따르는 기업이 같은 입장에서 일을 처리했음에도 기존과는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만약 블리자드가 중국 시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면 블리자드의 방침은 오히려 blitzchung을 영웅으로 만드는 퍼포먼스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어쨌든 중국 시장이 갖는 특이점이 이번 사태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시장논리보다 복잡하다
이제 다시 두 가지 이야기를 더 해보자. 하나는 통제와 검열로 돌아가는 중국 시장이 경제성장을 딛고 앞으로 대중문화 콘텐츠 전반에서 더욱 거세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만평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중국은 자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무기를 활용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대중문화 콘텐츠의 메시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한국도 중국과 어떤 이해관계에서의 충돌이 있다면 비슷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임업계에서 말 많았던 판호 이슈도 거대 시장을 통제하는 국가권력이 갖는 힘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에 선다.


다른 하나는 이 이슈가 결국 이러한 문제로 인해 국가 간 힘겨루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당장 하스스톤의 과도한 징계 사태는 미국 NBA가 최근 중국과 겪었던 일과 시간상으로나 개념상으로나 먼 일이 아니다.

처음에 중국에 과도하게 고개를 숙이며 저자세로 나갔던 블리자드가 입장을 수정해 blitzchung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추고 메시지를 가다듬은 배경에는 미국 의회의 압력이 존재했고, 여기에는 바로 직전 NBA에서의 홍콩 시위 지지 발언과 그로 인한 중국 불매운동으로 번진 사태 속에서 처음에는 중국에 고개를 숙였으나 미국 정치계가 개입하면서 발언의 수위가 변화한 경과가 있었다.

NBA와 블리자드는 미·중 간 무역분쟁 속에서 같은 입장에 위치했고, 같은 경과를 겪었다.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와 외교 문제가 엮이면서 이제 이 이슈는 그저 시장 이윤을 향한 방향성만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시장과 국가권력의 의도대로만 세상이 만들어지지는 않아
그동안 블리자드가 여러 콘텐츠를 통해 쏟아낸 메시지와 그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 모두 허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은 이윤에 한정되지만, 그 입장이 적어도 같은 방향이라면 굳이 적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소비자들이 이런 입장에 적극 반응함으로써 시장의 지향점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기업이란 존재를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소비자와 블리자드가 가졌던 그동안의 밀월관계가 단지 '그들은 돈을 추구했을 뿐!'으로 폄하될 필요는 없다.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온갖 패러디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 바깥 시장의 입장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에서 중국 국적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메이는 이제 인터넷상에서 반공깃발을 들고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우산을 쓴 이미지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특정한 기업, 특정한 콘텐츠, 특정한 이벤트가 단지 만드는 사람의 입장만으로 규정된다고 보는 건 옛날이야기다.

담론은 시장 혹은 이용자 단위에서 언제나 새롭게 구성되고 유통되며, 때로는 제작자가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돌아다닌다.

아마도 blitzchung 사태에서 가장 유의미한 움직이라면 바로 이런 지점이 아닐까 싶다.

대중의 평가라는 건 때론 무척 나약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강력한 힘으로 시장의 의도를 꺾어내기도 한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남자육상 200m 1, 3위를 차지한 미국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흑인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에 경례하는 대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고개를 숙이는 'Black power salute'를 시상대에서 펼쳤다.

정치적인 행위였고, IOC는 이에 대해 징계를 가했으며 이들의 의지에 동의해 함께 배지를 단 2위 호주 선수 피터 노먼을 포함해 세 선수는 이후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거의 40년이 지난 이제 이들 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과거와 같지 않다.

차별받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안위까지 걸고 온 세상에 메시지를 던졌던 이들의 용기는 이제 칭송받고 재조명된다.

이윤을 향해 움직이는 시장에 의해, 혹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위해 모든 메시지를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권력에 의해 자신의 영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blitzchung 선수를 보면서 1968년의 블랙 파워 살루트가 겹쳐 보였다.

홍콩 시위가 갈수록 격화되면서 생사의 위기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blitzchung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일에는 1968년처럼 40여 년의 시간이 들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68 멕시코올림픽에서 성조기에 경례하는 대신 흑인인권을 상징하는 검은장갑을 치켜든 두 선수는
오랫동안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blitzchung의 지금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I1968 멕시코올림픽에서 성조기에 경례하는 대신 흑인 인권을 상징하는 검은 장갑을 치켜든 두 선수는 오랫동안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blitzchung의 지금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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