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M M-PRINT GFW CITYLIFE LUXMEN 매경이코노미 MBN골드 MBN 매일경제
로그인|회원가입 |시청자 게시판
종목검색
  • 종목검색
  • 통합검색

헤드라인

광고
프로그램 바로가기
프로그램 바로가기 닫기
가나다순 카테고리순
광고
> 뉴스 > 기사
기사목록|||글자크기 
한국영화 출발점은 일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기사입력 2019-09-20 19:12
  • 기사
  • 나도 한마디
공유하기 
1919년 `의리적 구투`로 시작된 한국 영화는 100년 동안 민중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왔다.

일제시대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1926)은 조선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여줬고, 서슬퍼런 군사정권하에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1984)은 자유를 갈구하는 젊은이의 초상을 그렸다.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이한 올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뿌리깊이 박힌 양극화 문제를 고발하면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왼쪽부터).

한국은 유독 사회 고발적인 영화가 많은 나라로 꼽힌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이후를 그린 '오! 꿈의 나라'(1989)나 노동자의 투쟁을 소재로 한 '파업전야'(1990)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경유착을 담아낸 '내부자들'(2015),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2019) 등 상업 영화에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하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한국 영화 100년 좌담회'를 위해 모인 영화학계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는 출발부터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짚으며 지난 100년 동안 민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중문화로 깊숙이 자리 잡아왔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문재철 중앙대 교수(한국영화학회 회장), 조혜정 중앙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한우정 대진대 교수(한국영상제작기술학회 회장)는 식민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의리적 구투'(1919)와 '아리랑'(1926)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준비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사회는 문관규 부산대 교수(한국영화학회 부회장)가 맡았다.


◆ 화상도 불사했던 일제 시대 영화인들
일제강점기 조선 영화인들은 오랫동안 종속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을 통해 서구 문명을 수입한 우리나라는 영화 기술 역시 주로 일제를 경로로 받아들였다.

사실상 조선 영화계는 일본 자본과 인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초의 한국 영화로 꼽히는 '의리적 구투'도 촬영 등 제작 핵심은 일본 스태프에게 맡겼다고 조혜정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 인력과 자본이 주축이 돼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열망은 조선 영화인들 사이에 상존했다.

한우정 교수는 "박승필, 김도산, 이필우는 어떤 장비로 우리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식민지 조선 영화계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던 중 한국 영화만의 정서와 기술, 열망을 모두 터뜨리며 흥행에 성공한 것이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문재철 교수는 "조선 영화의 미학은 나운규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며 "스타 감독 탄생과 관객 형성이란 측면에서 남다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개봉 당시 '아리랑' 국내 관객은 15만명을 넘나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식민지 조선 인구 규모와 영화 대중화 수준을 고려했을 때 "현재로 치면 2000만 관객을 동원한 정도의 파급력을 갖는 뉴스"(한우정 교수)였다.


조선 영화인들은 자본 부족을 열정과 표현력으로 극복했다.

나운규가 감독을 맡고 출연까지 한 '벙어리 삼룡이'(1929)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조혜정 교수는 "불 타는 집에서 아씨마님을 안고 구출해서 나가야 하는 장면을 찍을 때 몸에 자연스레 불이 붙어야 했다"며 "그것을 찍기 위해 솜옷에 기름칠을 해 몸에 불이 확 붙게끔 처리했다.

영화적 열정으로 각종 한계를 돌파한 것"이라고 했다.


◆ 한국 영화의 미학과 한계 '리얼리즘'

좌담회 참석자들은 일제 시대를 거친 뒤 한국 영화엔 뚜렷한 미학적 특성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리얼리즘이다.

조혜정 교수는 "한국 영화엔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이 있다"며 "한국 영화계 출발 자체가 일제강점기에 이뤄졌기 때문에 대부분 스토리를 현실 소재에서 가져오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얘기했다.

그는 "영화인들에게는 실제 자신과 민족의 현실을 보여줘야 하는 게 일종의 사명의식처럼 느껴졌을 것"이라며 "때로 사실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계몽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평단에서나 관객 사이에서나 사회적 이야기를 하는 영화에 가점을 주는 모습이 보인다고 그는 해석했다.


문재철 교수는 "광복 이후 한국 영화 역시 산업성과 기술성의 제한 속에서 미학적 대안으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참고하게 됐다"며 "2000년대 중반에 들어 '1000만 영화'가 나온 이후 서서히 리얼리즘 강박을 이겨내게 됐다"고 소개했다.


◆ 자본과 예술 조화로 새 100년 꿈꿀 때
영화 전문가들은 한국 영화 발전에 대기업 자본이 상당한 공을 세운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시장 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면 창의성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쇠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우정 교수는 "롯데와 쇼박스, CJ가 없으면 한국 영화는 제작이 불가능한데 이게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며 "이들 영화만 영화관에 걸리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투자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영화계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100년에도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상영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시각도 제기됐다.

조혜정 교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제작되면서 국내에서 큰 논란을 겪었는데, 우리 영화계가 극장이라는 공간을 너무 제한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어떻게 영화를 창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국 영화계가 함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문재철 교수는 "미디어 환경 변화는 플랫폼 변화로 끝나지 않는다"며 "극장에 찾아오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혜정 교수는 "'보헤미안 랩소디' 성공에서 보듯 극장의 의미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며 "관객이 영화를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참여하며 같이 즐길 수 있는 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제작과 배급, 상영 관계자가 모두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 = 김시균 기자 / 박창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쇼박스

기사목록|||글자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