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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안전깃발 든 어르신만 20명…"노느니 용돈 버는거지"
기사입력 2019-09-1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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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울뿐인 노인 일자리 ◆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공익활동형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들이 `안전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연규욱 기자]

20년 가까이 공무원을 하다가 퇴직한 최 모씨(82). 그는 공무원연금을 일시불로 받은 이후에도 10여 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해 현재 월 약 60만원의 노령연금을 받는다.

기초연금까지 합하면 그의 월소득은 공적이전소득으로만 약 80만원에 달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또래 노인들에 비해서는 소득이 많은 편에 속한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문씨 또래(80~84세)의 공적연금 등 공적이전소득 평균액은 월 56만9200원이었다.

최씨가 서울의 모 초등학교 앞에서 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일환인 '안전지킴이' 활동을 하는 대가로 받는 급여(월 27만원)를 합치면 월소득 100만원이 넘는다.


11일 아침 서울시 소재 한 초등학교 후문 주변의 횡단보도 끝자리에서 '어린이 안전'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있던 최씨는 "사실 난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나와 아내랑 둘이 사는 데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라며 "그런데 힘든 일도 아니고 집에서 놀면서 TV나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이 일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확대일로를 걸으면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최씨가 배치받은 학교 후문 주변 또 다른 횡단보도에는 4명의 노인이 횡단보도 하나의 4개 모퉁이에 각자 서서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질 때마다 깃발을 들고 내리기를 50여 분 동안 반복했다.

노인들과는 별개로 학교 관계자도 이곳에 나와 학생들의 등교를 지도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학생 대부분이 등교를 마치고 10여 분이 지나서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날 학교 정문 인근 도로에서 활동을 벌인 노인을 합치면 학교 한 곳의 학생들 등교에 투입된 노인은 모두 20명 가까이 됐다.


한 달에 30시간 안팎으로 활동하면서 이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돈은 월 27만원이다.

시장형 사업단과는 달리 시간당 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이다.

최씨는 "하루에 1시간씩만 깃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 돼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며 "하는 일에 비하면 이 정도 수입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만들어진 이 같은 일자리는 지난해 54만4000개에 달했다.

정부는 이를 올해에는 64만개, 내년에는 74만개로 매해 10만개씩 늘릴 계획이다.

이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 역시 지난해 6367억원에서 내년에는 1조199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이대역 인근에 위치한 우리왕만두 2호점. 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시장형 사업단) 현장인 이 가게는 지난 6월 수익성 저하로 문을 닫았다.

[연규욱 기자]

노인 일자리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의 한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사실 공익활동형 노인 일자리 사업은 어르신들의 노동력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용돈을 쥐여주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힘들게 노동하는 일이었다면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혈세를 투입해 허드렛일만 늘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한다"며 "사실 환경미화 사업에 투입된 노인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민원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지난달에 늘어난 취업자 수 45만2000명 중 60대 이상이 39만1000명을 차지한다고 지난 11일 발표했다.

반대로 30대와 40대 일자리는 각각 9000명과 12만7000명 줄었다.


보건복지부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신청하는 노인의 생활수준에 따라 일자리를 주고 있다고 하지만 최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자리가 다소 남발되는 측면이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 기관인 서울시내 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신청자 대부분은 건강 상태 등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배정받기 때문에 신청 노인 중 90%가 일자리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장기적으로는 공익활동형보다는 시장형 사업단 등 수익을 창출해내는 일자리를 더욱 늘려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5일 마포구 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만두가게에서 만난 문 모씨(77)는 "지난 6월 2호점이 문을 닫으면서 2호점에서 일하던 노인들이 모두 1호점에 배정되다 보니 근로시간이 확 줄게 됐다"며 "지난달엔 한 달 동안 겨우 5번 나왔다"고 말했다.

한때 우리왕만두에서 일하면서 월 50만원 이상씩 벌었다는 문씨가 지난달 번 돈은 18만7875원(4.5시간씩 5일 근무)에 불과했다.

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시장형 사업단 대부분이 수익성이 떨어져 노인들이 월 25만원 이상 버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18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통계 동향'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시장형 사업단 일자리를 경험한 5만4264명 중 중도 포기자 수는 9135명(16.8%)이다.

이는 공익활동형 일자리의 중도 포기율(9.8%)보다 훨씬 높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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