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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누구 말이 맞는 것 같으세요
기사입력 2019-08-2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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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장관이 맞나요, 최 회장이 맞나요?" 요즘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면 꼭 물어본다.

일본 수출규제 도발로 불거진 소재·부품 산업 얘기다.

소재·부품 산업이 뒤처진 이유에 대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중소기업이 만들어도) 대기업이 안 사준다"고 했고 최태원 SK 회장은 "물론 만들 수 있겠지만, 품질이 문제"라고 했다.


"글쎄, 둘 다 맞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20년간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기업을 일궈온 사장님의 말끝이 흐려졌다.

재차 물어보니 마지못해 "허허 참, 박 장관 51, 최 회장 49라고 해둡시다"라고 웃는다.

웃음 속에 뼈가 있다.

중소기업의 설움 같은 것이랄까. 수년간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왜 없었겠는가. 혁신기술을 개발해도 테스트할 곳이 없고 대기업은 거래처를 바꿀 생각이 없다며 문전박대다.

기술보다 가격부터 따지고 납품 실적을 요구한다.

이익이 나면 납품단가부터 깎고 다른 기업에 기술을 슬쩍 넘기기도 한다.

박 장관 말이 51% 맞다고 한 건 아마 이런 고질적 관행을 얘기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최 회장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국산화했다고 해서 독일제 장비로 테스트해보면 순도가 나오지 않는다.

순도 0.1% 차이는 품질과 가격에서 엄청나다.

검증이 끝난 일본 소재를 잘 쓰고 있는데 굳이 생산 공정을 바꿀 이유도 없다.

바꾸면 안정화 작업을 두 달 정도 해야 하는데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나. 연간 수억 원 정도 사다 쓰면 되는데 국산화하기 위해 수십억 원을 투자하는 일을 왜 하나. 결국 두 사람의 언쟁은 돌고 도는 뫼비우스 띠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중소기업을 취재하던 초짜 기자 시절 국산화는 굉장한 뉴스였다.

기술 자립의 열의로 산업현장은 24시간 뜨거웠고 성공담에 신바람이 났다.

'맨땅에 헤딩'하며 불가능해 보이던 기술에 도전해 국산화를 이뤄온 것이 한국 기업 역사 아니던가. 언젠가부터 소재와 부품을 외국에서 싼값에 조달하는 '글로벌 밸류 체인'에 의존했다.

삼성은 최상의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해 한 해 수십조 원 이익을 내는 초일류기업이 됐다.

돈은 더 많이 버는데 국산화 쾌거 같은 맛은 사라졌다.

물론 잘못된 전략은 아니다.

성장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다.

한국의 반도체와 일본의 소재는 글로벌 분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문제는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등장 이후 글로벌 밸류 체인을 미국 중심으로 옮기려 하고 중국은 부품과 소재를 완벽히 자립하는 '홍색 공급망'을 구축하려다 둘이 한판 붙었다.

아베 신조는 이런 일이 비단 미국과 중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줬다.

우리 주축 산업이 얼마나 일본 소재에 의존하고 있는지 환기시켜 줬고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을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중소기업 역할론'도 일깨워줬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장관과 최 회장 말 반대로만 하면 된다.

중소기업이 국산화하면 대기업은 일정량을 구매하도록 제도화하고 중소기업은 품질을 계속 극대화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와신상담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원천기술을 자유롭게 시험해 볼 수 있는 성능평가 팹을 구축하고 신뢰성이 입증된 제품은 공공기관에서 안 되면 국영기업이라도 만들어서 구매해 실적을 쌓게 해야 한다.

중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반도체 소자, 전기차 배터리 등 불공정하다시피 국산 제품을 우선 평가하고 일정량 사용을 강제한다.

샤오미, BYD 등이 모두 그렇게 컸다.


2010년 중국과 일본의 희토류 전쟁에서 중국을 굴복시킨 건 일본의 기술력이었다.

기술을 가진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 경제 전쟁이다.

소재·부품은 세계 최고 순도의 제품만 살아남고 2등은 소용없다.

그래서 일본 소재 의존도가 40~80%를 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중소기업 기술력은 99.9%까지는 된다고 본다.

문제는 99.999% 이상의 초고순도·초미세 수준까지 기술력을 어떻게 키우느냐다.

독일 히든챔피언처럼 중소기업이 먼저 제품을 대기업에 제안하고 산업을 이끌어가는 중기 중심 생태계 수준은 돼야 '2019년 사태'가 우리 경제에 전화위복이 됐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병득 중소기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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