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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일본 사용 설명서(3)
기사입력 2019-08-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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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없었으면 일본의 한국 때리기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총리 자리에 아베 신조 아닌 다른 정치인이 있어도 한국을 공격했을까. 일본의 경제보복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파악하기 위해 이런 질문에서 출발해 보자.
아베에게는 오래 공들인 큰 그림이 있다.

전후 외교 총결산과 전쟁 가능 국가로의 개헌이라는 두 키워드다.


지난해 9월 총리 3연임에 성공했을 때 그는 전후 외교 총결산을 내걸었다.

올 초 기자회견에선 "전후 일본 외교의 총결산 목표가 크게 전진하는 한 해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 한국, 북한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겠다는 의지다.


러시아와는 북방 영토 교섭이다.

지난해 모스크바를 방문하며 공을 들였지만 아직 결론을 못 내고 있다.

중국과도 획을 긋기 위해 지난해 일본 총리로는 7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갔다.

500여 명의 경제사절단을 대동했다.

중·일 관계의 새 시대 운운하며 안보 협력까지 언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이 성사되면 셔틀외교 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북한과도 국교 정상화가 목표다.

납치 문제가 선결 과제다.

미·북 비핵화 협상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변수가 더 커서 답보 상태다.


한국과는 과거사 정리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핵심인데 박근혜정부 때 합의해 설립했던 위안부 재단 해체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전에 일본은 이미 한국을 대하는 정책에 기조 변화를 보였다.

외교청서나 총리 연설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나 '상호 신뢰' 등의 표현을 차근차근 지웠다.

한국을 협력 상대가 아니라 견제 상대로 바꿨다.

그동안 과거사 때문에 갈등을 키우지 않고 엎드려 왔다면 이제는 강공을 펴기로 한 것이다.


전후 외교 총결산을 마무리한 뒤 행보는 개헌이다.

평화헌법 9조(전력과 교전권 보유 금지)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한 뒤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하는 두 단계 개헌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2006년 9월 1차 집권 때 '전후 체제서 탈각'이라는 표현을 쓰며 헌법을 개정할 야심을 보였다가 좌초됐다.

2012년 12월 2차 집권 후엔 섣부른 행보를 자제하고 치밀하게 작업 중이다.

헌법을 개정한 총리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다.

그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나라,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다.


2015년 패전 70주년에 발표한 아베 담화에서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며 야심을 보여줬다.

전범국의 멍에를 벗고 헌법을 고쳐 전쟁 가능 국가로 간 뒤 동북아시아 지역과 인도·태평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묵인하에서다.


안정적인 개헌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내년 도쿄올림픽 이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택할 수도 있다.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에 총력을 쏟을 것이다.

개헌에 무관심한 일반 여론을 끌어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수층 결집을 위한 외부 때리기가 계속 필요하다.

상대는 여전히 한국이다.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 전략물자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에 이은 추가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

한국산 수입품에 무관세 장벽을 걸거나 송금 규제, 비자 발급 강화 등이다.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차원을 넘어 전방위적 한국 때리기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우리 쪽이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도 수용하지 않을 듯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대한 상응 조치라는 설명은 핑계다.

과거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이 본심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지배의 가해자로서 피해자가 수용하는 사죄와 반성이 없는 한 과거사는 정리될 수 없다.

아직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를 억지로 떼어 내려는 데서 아베의 잘못된 선택은 시작됐다.

일본의 한국 때리기는 아베 신조라는 정치인이 총리로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위안부 합의 파기나 강제징용 판결이 아니었어도 취했을 카드다.

전후 외교 총결산과 전쟁 가능 국가로 가는 개헌을 위한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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