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계급표’가 지배하는 신분사회...“어디 사세요?” 물어보면 안돼요 [기자24시]

30대 A씨가 집값의 약 50%를 대출을 내 지난 3월 이 아파트 전용 84를 59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파악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전경.
언제부턴가 “어디 사세요?”란 질문이 한국 사회에서 불편한 질문이 됐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자, 계급이며, 신분이 됐기 때문이다.

거주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방의 ‘신분’을 묻는 가장 노골적인 질문이 됐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현재 30대 중후반~40대 초반 세대가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며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 위기와 함께 성장한 이 세대에게 ‘상대 평가’와 ‘서열 경쟁’은 생존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됐다.


‘오르비스 옵티무스(오르비)’라는 입시 커뮤니티의 등장과 대중화가 이 세대가 입시를 치른 시기와 겹치는 건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상위권 학생들의 입시 정보 공유 커뮤니티로 2000년대 중후반 급속히 확장한 이 사이트는 입시 정보 공유 플랫폼을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 줄 세우기 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무한 경쟁’에 익숙한 이 세대에게 노력과 성취는 곧 존재의 이유가 됐다.

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성취물의 ‘서열화’는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서열화된 시선은 대학에서 부동산으로 바뀌며 지속되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유행하는 ‘부동산 계급표’는 수능 등급에 따라 촘촘하게 대학이 나열되는 대학 등급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수십억원 대출을 내서라도 강남에 진입하려는 최근 30·40대의 움직임엔 이런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인식 가속화될수록 사회 전체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사회 갈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지역에 모든 관심과 투자가 몰리면서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서울 외곽과 지방은 공동화된다.

무주택자는 ‘집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낙오자’처럼 취급되기까지 한다.

지금이라도 이 부동산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에 거액의 대출을 일으켜 최대한 선호 지역에 집을 사는 행위가 잇따랐다.


정부가 지난 27일 초강력 대출 규제를 발표하며 이런 행태에 제동을 걸었다.

자금줄이 막히며 불타올랐던 매수세는 일시적으로나마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열화된 이 탑승 열차에 올라 타려는 욕구까지 정부가 제어할 수 있을까.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 나오더라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김유신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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