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후 월가 대형은행에 부과된 각종 규제를 확 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국가부채 여파로 국채 안정성이 크게 흔들린 가운데 국채 매입의 큰손인 메가뱅크를 옭아매는 자본 확충 규제를 해제해 국채 매입 여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폴리티코 보도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사진)을 중심으로 관련 기관들이 시중은행에 대한 자본규제인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Supplementary Leverage Ratio) 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두고 사실상 합의에 도달한 상태다.

시중은행을 둘러싼 각종 규제 완화 논의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감독국(OCC),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참여하고 있다.

최종안은 수개월 내에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베선트 장관은 지난달 은행들의 자본 요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SLR 완화를 최우선 정책 과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SLR은 보통주 자본금을 총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자산 2500억달러 이상 대형 은행은 SLR을 3% 이상, 전 세계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초대형 은행들은 5% 이상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일정한 자기자본을 보유해 자산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때에 대비하라는 취지다.

그런데 이 규제를 완화하게 되면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미 국채와 연준 지급준비금을 분모(자산)에서 뺄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미 국채시장의 유동성이 확대되는 효과가 발생해 '스텔스' 양적 완화 조치로도 불린다.


현재 SLR 규제를 받는 초대형 은행은 JP모건체이스·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그룹·웰스파고·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등이다.


그간 시중은행과 공화당 내부에서는 이 규제로 은행들이 미 국채 거래를 제약받게 된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자산운용사 오토노머스 분석에 따르면 레버리지 비율 조정 폭에 따라 메가뱅크들이 대차대조표상 2조달러(약 2780조원)에 달하는 여유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SLR 규제 완화는 트럼프 1기 때도 각 기관 간에 내용이 검토됐으나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면서 일시적으로 규제를 풀어 국채와 연준 준비금에 대한 자본 확충 부담을 제외했다.

이것이 다시 정상화한 2021년 4월 이후 지난 4년간 추가 완화된 적이 없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2기가 추진하는 SLR 규제 완화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종 규제와 조사 압박을 받아온 대형 은행에 가장 강력한 정책적 승리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규제 완화로 은행이 미 국채를 더 쉽게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국채시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물가와 고용이라는 이중 책무에서 트럼프 관세전쟁이 초래한 불확실성으로 통화정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SLR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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