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이렇게 추락”···조지프 나이·니얼 퍼거슨의 예측 경로에 올라탄 트럼프의 미국 [★★글로벌]

퍼거슨, 14년 전 美 패권 쇠락 정면 경고
“10년來 부채 이자액 ‘퍼거슨 한도’ 도달”
나이 교수, “美 매력은 해외원조와 교육”
트럼프 정책은 두 석학 정답과 반대 방향
외신들, “美 경제에 ‘바보 프리미엄’ 붙어”

니얼 퍼거슨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 연구원 <사진=후버연구소>
“10년 내에 미국 연방부채 이자액 지출이 국방비 지출을 초과할 것이다.


저명한 경제사학자이자 지정학 전문가인 니얼 퍼거슨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지난 2010년 호주 매체 ‘디 오스트레일리안’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당시 세상은 ‘설마 그럴 일이 있겠느냐’며 그의 인터뷰 내용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예측보다 4년이 지연됐지만 ‘천조국’(한 해 국방비 1000조원을 쓰는 나라)의 미국은 2024년 회계연도에서 퍼거슨의 예측과 일치하는 대차대조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처음으로 연방정부 부채 이자액이 국방비 지출액을 넘어선 것입니다.


매일경제는 미국의 패권 쇠락을 경고한 니얼 퍼거슨 선임 연구원과 지난주 타개한 국제정치학계의 거목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촌철살인 예측을 소개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미국호를 이끄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들 석학이 십 수년 전에 경고한 실패의 경로를 회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위에 올라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습니다.


먼저 퍼거슨 선임 연구원이 경고한 ‘국가 부채 이자액의 국방비 지출액 초과’ 문제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이 역사학자는 이를 ‘퍼거슨 법칙’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이 법칙은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면 국가 패권의 핵심인 국방 역량 확대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패권의 쇠퇴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름에서 혼동할 수 있는데 이 법칙은 스코틀랜드 출신 정치 이론가인 애덤 퍼거슨이 1767년 ‘시민 사회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에서 경고한 공공 부채의 위험성에서 출발합니다.


이 법칙을 확장해 퍼거슨 선임 연구원은 제국의 몰락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한해 국가 부채 이자로 지출하는 돈이 국방비 예산을 초과하는 지점으로 보고 이 임계점을 ‘퍼거슨 한도(limit)’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16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 제국부터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제국까지 이 임계점을 넘어선 제국이 패권 쇠락으로 재앙을 맞았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경우 2024년 회계연도에서 부채 상환 지출액(1조 1124억 달러)이 국방 지출액(1조 1107억 달러)을 처음으로 넘어서면서 ‘퍼거슨의 법칙’ 경고등이 켜진 것이죠.
퍼거슨 선임 연구원은 이른바 ‘총’과 ‘쿠폰’(국가부채 이자 부담액) 사이에 형성되는 이 긴장이 결국 패권 안정을 저해하게 된다며, 미국의 경우 방만한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급진적 개혁 혹은 경제 부문에서 생산성의 기적을 이루는 것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번 트럼프 2기의 정부효율부(DOGE) 활동을 보면 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연방 공무원 해고 등 대증요법만 난무한 실정입니다.


또 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기술 혁신과 규제 완화, 시장 선점 등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성을 올려야 하는데 무리한 상호관세 전쟁으로 혁신 기업들에 불확실성을 키우며 오히려 시장 선점의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최근 별세한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통찰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고(故)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석좌교수 <사진=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그는 2004년 외교 전문매체 포린어페어즈에 올린 글에서 미국 ‘소프트파워’의 쇠락을 경고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패권의 쇠락 걱정이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즐기고 있었음에도 나이 교수는 선견지명으로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그 구체적 사례를 열거했습니다.

먼저 나이 교수가 지목한 위기 요인은 미국의 해외원조 프로그램과 미국의 자유주의 정신을 송출하는 방송 네트워크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산 지원이 축소되면 미국의 소프트파워에 중요한 위기가 올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핵심 경쟁력이 ‘교육’에서 비롯된다며 고등교육 시스템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21년이 흘러 등장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조지프 나이 석좌교수가 제시한 정답과 반대의 길을 걸으며 되레 소프트파워 쇠퇴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고립주의 가속 버튼인 이민 단속을 명분으로 대학들에서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는 한편 다양성 문화 전쟁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혼란에 놀란 인재들이 미국을 탈출하고 있고 유럽과 중국은 쾌재를 부르며 이 인재들을 흡수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또 재정 효율화를 명분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원조 프로그램과 방송 네트워크 관련 예산을 우선해 중단시켰습니다.

나이 교수는 포린어페어즈 기고에서 뉴턴 미노우 전 연방통신위원장 발언을 인용해 “미국은 폭탄을 발사하는 데 매 100달러를 쓰는 반면 미국의 사상을 발사하는 데는 1달러를 쓴다.

미 국방비 예산의 1%만 공공외교에 투입해도 관련 예산이 지금보다 4배 더 확충된다”라고 당부합니다.


보수 경제 매체인 월스트리트저널(WSJ)조차 최근 사설에서 예산 중단으로 폐지 위기에 몰린 미국의 소리, 자유아시아방송 현실을 진단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국 부채를 둘러싼 니얼 퍼거슨 선임 연구원의 경고는 미 월가 큰손들의 공포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의 공동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은 연방 정부의 부채 이자 지출을 국가 위기의 신호라고 경고했고, 루치르 샤르마 록펠러 인터내셔널 회장은 미국의 경제 성과가 막대한 부채로 부풀려졌으며 ‘모든 거품의 어머니’가 곧 터질 것이라고 염려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미국 예외주의’에 베팅하지 않을 때”라고 경고합니다.


역대 최고 수준인 3477억 달러(약 487조원)의 현금을 들고 있는 시장을 관망 중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행보 역시 시장을 짓누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경제의 예외주의 신화에 균열을 가져온 최근 미 국채 수익률 급등과 더불어 해외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 처방을 가리켜 미국 경제에 ‘바보(moron) 프리미엄’까지 붙었다고 경고합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자가 대중으로부터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트럼프 2기 출범 넉 달도 안 돼 세상이 미국 경제에 ‘바보 프리미엄’을 붙이는 상황을 볼 때 남은 45개월 간 미국은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패권의 몰락 속도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일 자신을 교황의 이미지로 합성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미지=트럼프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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